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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14. 5. 1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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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중에는 독특하게 인연이 된 친구 세 명(만교, 병만, 춘호)이 있다.

36년 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앞산 아래에 깃들어 살 때 만난 동네친구들이다.

스무 살의 나이, 대학교에 갓 입학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동기이기도 한 만교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동네 독서실에서 처음 만났고

만교네 집과 이웃하여 살던 춘호와도 자연스레 친구가 되어 학교를 함께 다녔다.

만교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병만이는 나처럼 만교집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자연스레 만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특별히 바둑 실력이 나와 비슷해서 더욱 좋았다.

 

당시의 네 명은 만났다 하면 영락없이 김치 안주로 막걸리를 한 잔씩 하면서

세상 근심을 도맡아 했었다. 밤을 꼴딱 새우는 날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난하고 불우하게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할 말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불콰해지면 춘호의 멋진 기타 연주솜씨에 맞춰 노래도 부르고 간혹 카드놀이도 했다.

내가 가끔씩 시를 하나 써서 친구들한테 보이면 그들은 그럴듯한 말로 칭찬을 해 주었다.

아마 내가 기죽지 않고 오랜 시간 시를 쓰려고 노력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친구들 덕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항쟁이 한창일 때 만교네 집 TV에서 흘러나오던 장면이 기억난다.

TV 방송에서 인기가수들이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지만 흐르는 자막이 심상치 않았다.

'전남 광주지역에서는 온갖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께서는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마시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궁금증이 폭발할 정도였지만 어느 방송도 자세한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분명히 피의 학살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때였을진대, 모든 방송은 그렇게

정권의 시녀가 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고, 철저하게 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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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늘 어울려 지내던 우리들, 제 각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1년에 두 번, 명절 이틀 전 저녁에는 반드시 만나 술 한잔씩 나누면서 취했었다.

50대 중반을 넘긴 지금까지 단 한 해라도 그 약속을 거른 적이 없다.

춘호가 대전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는  네 명이 힘께 모이기는 쉽지 않았으나

만교, 병만, 나 이렇게 세 명만이라도 끈끈하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네 명 모임은 대전 사는 춘호가 특별히 배려해야만 겨우 가능했다고나 할까.

 

20대 후반 무렵, 다들 좋은 짝들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잘 키웠다.

자녀들도 어느 덧 성인이 되어 과거의 우리처럼 멋진 젊은 날들을 구가하고 있을 거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가끔씩 더듬어 보게 된다. 정말 잘 살고 있는지를.

 

지남 토요일 11시쯤 네 명이 모처럼 모였다. 선산 '열호재(悅乎齋)'에서.

그 때 찍은 사진 몇 장을 여기에 싣는다. 좀더 많은 사진을 찍어둘 걸......

 

 

제일 오른쪽의 만교는 모 회사의 부사장이다. 젊은 시절 평생 3억을 버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미 그 목표는 달성했고, 영어 실력을 더 쌓아서 지금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까지 오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젊은 시절 나와는 생각의 차이가 많아서 자주 언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이젠 그 차이도 인정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심심할 정도로 충돌이 없다. 평화롭다.

안타깝게도 교통사고로 몇 년 전 모친이 돌아가셨고, 홀로 남은 아버님이 곡기를 끊고 술만으로

살고 계시기에 여간 걱정이 아니다. 한편, 육사를 졸업한 아들 찬호군은 애비를 닮아 그런지

머리숱이 적어 데이트할 때 조금 신경이 쓰인다는 말을 한단다. 싱긋이 웃어줄 수밖에.^^

 

여인네가 한 분? 춘호의 부인이다. 춘호보다 네 살 연하인데,

그를 만나기 전까지 데이트 한 번 안 해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고는

서로 금방 마음이 통했던가 보다. 신랑이 연봉을 많이 받지만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있고,

의미있는 NGO 활동도 하면서 재미있게 산다. 딸 유진(25)이가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건축사 사무실에 정식 취직을 해서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

 

제일 오른쪽의 춘호는 아직 흰머리 하나 없고 피부도 고와서 40대 초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카이스트 출신의 박사학위 소유자로서 원자력 분야의 전문가로서 국가 발전의 공헌도가 높다.

맨왼쪽의 병만이는 거의 백발 수준이지만 피부는 아주 좋다. 얼마 전 옛날에 살던 동네로 이사를 갔단다.

사업에 손을 댄 이후, 거의 실패하여 재산을 많이 잃어버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형님 회사에 다니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아내의 뒷바라지와 중등학교에서

특수교육을 담당하는 맏딸의 정신적 후원이 든든하게 작용해서 요즘은 한창 행복감에 젖어 있다.

 

 

 

  네 명이 모처럼 함께 모여 유진 엄마가 찍어주는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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