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으레 입학하는 순간부터 수능시험을 치기 전까지 야간자율학습에 모두 참여하는 것을 마치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부분의 학교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서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일찍 등교해서 아침자습을 하고, 1교시부터 6,7교시까지 정상수업, 그리고 한두 시간씩 이어지는 방과후 수업(보충수업), 저녁 식사 후 잠시 쉬다가 다시 7시부터 10시 또는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 이 모든 것이 시계추처럼 매일 반복되고 있는 것이 입시교육을 담당하는 고등학교의 현실이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이러한 야간자율학습 시스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먼저, 교사와 학생들의 경우를 보자.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흔히 '바늘과 실'의 관계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하는 말일 게다.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니 교사도 그들과 함께하면서 학습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이른바 '야자감독' 차례가 돌아오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감독을 하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 대하여 대견스러워 하는 마음도 있지만, 자습 분위기를 흐트러놓는 학생들과 기싸움을 하면서 감독을 해야 할 때도 있어서 여간 고통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간의 줄다리기와 숨바꼭질을 연상케 하는 온갖 진풍경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당장 교단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 동료의 짜증섞인 말이 떠올라 가슴이 아리다. 이렇게 감독교사들은 이런저런 형태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학습효과의 유무를 떠나서 서로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 '일제 야간자율학습'의 시스템을 계속 방치해 두어야만 할까?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일 수 있을까?
학부모들의 생각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서 자녀들의 학습을 도와 꼼꼼히 챙겨주니 일단은 고마워 할 것 같다. 그러나 그 자녀들께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잠을 청하거나 히히덕거리며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는 등 어수선한 야간자율학습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한다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그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냐며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감독을 요구할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자습 분위기가 어떻든간에 학교에서 끝까지 잡아두길 바랄 것이다. 일찍 귀가해서 부모 속을 썩이느니 차라리 학교에서 강제로 잡아두기라도 하면 그 시간이나마 평화로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학생들도 일찍 집에 가서 부모의 간섭을 받느니 학교에 남아 적당히 시간 보내다가 늦게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위에 언급한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반계고등학교 1,2학년 교실 야간자율학습의 현 주소일 것이다. 야간자율학습 시스템이 잘못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희망을 받아서 원하는 학생들만 남아서 자율학습을 해야 하는 것을 거의 강제하다시피 야간자율학습에 참여시키면서 나타나는 현상일진대, 개선되지 않고 이대로 지속되어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로 갈등하면서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필자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특별하게도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전 교직원들이 강당에 모여서 야간자율학습과 관련한 대토론회를 가진 적이 있다. 숱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훌륭한 개선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끝내 단행되지 않아서 속상해 하고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 아마 단위학교 내에서만 특별조치 차원의 개선책을 시행했을 때 예상되는 문제들을 관리자들께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결국 학교 단위의 시스템 변화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고, 교육자치 차원에서 시,군교육청 단위별로 제대로 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자면 교육를 책임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좀더 깊이 논의하고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여 모든 교육 주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자기만의 개성을 발휘하면서 진로를 찾고, 직업을 택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런 일과 직업이 당장 눈앞에 없을지언정 그것을 찾기 위한 각자의 고민과 노력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생각이 경쟁력인 시대에는 남보다 앞서 가기 위해선 생각이 남달라야 한다. 1%의 다른 생각이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도 있는 법인데 열정적인 학생들을 획일적인 시스템에 가두어 놓아서는 안 된다.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후유증을 감당할 만큼의 능력이 우리 교사들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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