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길 교장 선생님께
교장 선생님께서 보내신 내부메일을 이틀이 지난 뒤에야 발견하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벅찬 마음으로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면서
당장 답장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이제 쓰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대구의 모대학에 가서 입학사정관 전형 서류 심사를 도왔습니다.
입학사정관으로 위촉이 되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셈이지요.
진로진학상담 교사이기에 가능했던 입학사정관 위촉이었다고 봅니다.
12개 과에서 각각 교수님 두 분과 한 명의 진로진학상담 교사가 한 조가 되어
하루 종일 수험생들의 서류심사를 해 봤는데, 앞으로
진학지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전공인 국어 교과를 뒤로 하고 낯선 진로진학상담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물주의 뜻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난 겨울방학부터 학기 중, 올 여름방학 때까지 570 시간의 연수를 받으면서
다소 반복되는 내용이 있었지만 흥미있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고,
빡빡한 일정이었어도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답니다.
전임교 구미고에서 1년밖에 근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긴 해도
이곳 사곡고에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생각도 간간히 곁들이면서 상담하고 격려해 주는 즐거움이 큽니다.
학급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할 때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은데
1:1 상담 장면에서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아주 좋습니다.
국어교사로서 입시문제를 늘 다루어야 했던 스트레스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자아 효능감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진로진학상담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실감합니다.
그러나 많은 동료 선생님들은 진로진학삼담 교사에 대해 무관심해 보입니다.
'진로'는 담임이 맡으면 되고 '진학'은 고3 담임이 전적으로 맡으면 되는데,
"진로진학상담교사가 뭐 따로 필요할까? 수업 적게 하려고 선택한 것 아닌가" 하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때도 간혹 있답니다. 일종의 자격지심일까요?
학교가 크든 작든 단 한 사람만 배치되어 있고 특별실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접촉이 별로 없는 탓이기도 할 겁니다. 외톨이로 보이기 십상이겠지요?
저도 맨처음에는 혼자 상담실에 있다는 것이 적응이 잘 안 되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고독의 외로움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끔씩 몇몇 친한 선생님들이 찾아오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소파에 마주 앉아 설록차를 한 잔씩 우려내어 한 잔씩 드리는 즐거움도 크구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스스로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과 만날 때가 제일 좋아요.
교장 선생님께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성공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먹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소중한 삶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그렇게 행복한, 성공적인 삶을 살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교사 스스로가 그런 삶을 추구하고, 제자들에게 그 모범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신명나겠습니까? 신명난 교사가 신명나게 가르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그러나 현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어서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누군가 '가장 재미없는 공부를 가장 오래 하고 있는 대한민국 학생들'이라고
우리의 교육현실을 진단한 바 있지만, 이 학력지상주의 틀이 깨지지 않고는
대한민국 교육은 별다른 희망이 보이질 않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그들이 행복해 할 수 있도록 멋진 동반자와 조력자가
되길 바란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 가슴속에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진로진학상담을 맡은 저에게 가장 걸맞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후배를 생각해 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스스로 선택한 이 길에서 많은 희망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도 그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최근 3,500만 원의 진로활동실 구축예산이 내려왔습니다.
2층 교무실 옆, 구석에 있는 교실 한 칸과 복도 공간을 이용해서
진로상담실을 꾸미기로 했는데, 어느 정도 설계를 마쳤고
조만간 공사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들어가네요.
저는 인테리어 비용보다는 수업에 꼭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구축하고 싶은데
관리자분들의 생각은 좀 다르더라구요. 결국 제가 요구하던 것을
포기하고,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원래 진로진학상담실 공간이 나오지 않던 것을 학교에서
힘들게 마련해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교장 선생님이 결재권자인데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로진학상담'이라고 말씀하신 것,
저에게 주시는 최고의 격려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구미여고에서 근무하실 때, 간혹 운동장 조회 시 교장 선생님의 연설은
한 군데도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어찌 그렇게 말씀을 잘 하시는지 동료들 모두가 혀를 내둘렀답니다.
규모가 작은 학교에서 들려주는 교장 선생님의 연설 또한 여전하시겠지요?
농남중 이영미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더랬는데, 근무 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처녀가 아직 시집을 안 가서 걱정인데, 신경을 좀 써 주셔야죠?
교장 선생님의 건강과 가내 두루 평안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언젠가 또 한번 학교에 방문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9/7 이권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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