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영암사지 일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화개장터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2. 6. 6. 21:13

본문

아침 일찍 일어나 계획했던 여행을 시작했다.

평상시 늦잠을 자던 아내도 여행을 가는 날 만큼은 부지런하다.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서적 131호, 합천 영암사지는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 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 본 결과,

불상을 모셨던 금당 · 서금당 · 회랑터 · 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 · 삼층석탑(보물 480호) · 귀부(보물 제 489호)·

당시의 건물 받침돌 · 각종 기와조각들이 남아있다. 특히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연대를 살피는 데 중요하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연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절터 내에 흩어져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준다.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 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사찰로 보인다. (인터넷 자료 인용)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의 겉표지 사진으로 선택된 쌍사자 석등,

그 매력적인 자태를 감상해 보기 위해 영암사터를 찾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지개 다리가 급경사를 이루며 석축 좌우에 걸려있는데,

누구는 경사의 각도를 감안하여 이것을 'sin12도'라고 했단다. 은근한 곡선미가 자랑이다.

몸을 계단에 바짝 붙이고 뒤꿈치는 허공에 맡기고 앞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겨우 오를 수 있는 무지개다리인 셈인데, 극락세계를 향하는 어려움을 상징한 듯하다.

 

 

 

조각의 정교함이야 석등의 세월만큼 무디어졌지만 전체적인 균형미는 고스란히 남았다.

두 사자의 예쁜 엉덩이에 자꾸 눈이 간다는 아내의 솔직함에 한바탕 웃고 말았다.

 

금당터의 네 면 중 세 면에 돋을 새김한 동물은 어떤 동물일까? 사자와 삽살개의 형상이 맞을까?

 

 

 

 

석조(石槽), 돌구유, 큰 돌을 파서 물을 부어 쓰도록 만든 돌그릇

 

 

자세히 보니 아내의 말이 실감난다. 석등받침을 한 두 사자의 튼튼한 네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을 테지만, 통돌의 투각이 자연스럽고 무릎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특히 엉덩이 부분의 곡선미는 이 석등의 가치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서금당터 좌우에 보이는 두 개의 귀부는 생김새가 약간 다르기는 하나 전체적 조각수법은 비슷하다.

금당 옆에 귀부를 나란히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귀부(龜趺) 위에는 이수(首)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제격이지만

절이 불타고 파괴되면서 돌조각마저 고유의 원형을 잃었던 것 같다.

 

 

영암사지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찾기로 한 곳이 바로 섬진강이다.

 섬진강의 강물은 살아있었다. 모래 위를 완만히 흐르면서 사람들을 향하여 손짓하는 듯 했다.

나에게 다가오시라. 모래를 잔뜩 품은 나를 밟아도 보고, 나의 속살을 들여다 보시라

마치 죽어가는 4대강의 절규에 동정을 보내는 섬진강의 갸륵함 같아서

한 줌의 내마음 강물에 담아 섬진강 물결 위에 띄어 본다. 천천히 내마음이 흘러간다.

재첩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함지를 물 위에 띄워놓고, 바삐 손을 놀리고 있다.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는 섬진강은 아무리 보아도 부처님의 자비를 닮았다.

 

 

 

 

 

 

재첩국 한 그릇, 재첩회덮밥을 각각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1부에 나오는 배경이 하동 악양면 평사리이다.

 

최참판댁 누마루 위에서 내려다본 평사리 일대의 논, 둑 너머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당시의 실제 건물이 아닌 소설의 배경을 영화세트장처럼 꾸며놓은 건물이지만

 제법 실감나게 연출해 놓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으니 주변의 상가가 성업 중이다.

 

 

 

한 달에 10일쯤 이곳에 와서 명예 최참판의 역할을 하는 정 선생님을 만났다.

하동에서 한문교실을 운영하고, 평생교육원에서 한문 강의를 하고 계시는 봉사자이시고

개인적으로 한시 창작에 관심이 많아 학회지에 작품이 실릴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명예 최참판답게 사서삼경을 언급하고 시경에 나오는 '시삼백일언이폐지왈 사무사'를 풀이하면서

자연스레 이야기하시는 봉사자 어른의 구수한 입담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명예 최참판 어른의 이야기를 멀찌감치서 듣고 있던 나는 그분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로 마음먹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며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성공, 명예 최참판이신 정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만나 이야기하다 보니 

그의 너그럽고 깊이있는 인간적 매력에 곧 빠지고 만다. 한 시간 이상을 얘기했지 싶다.

 

봉사자 정 선생님은 청학동 이정석 훈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나도 30대 후반에 그 훈장을 청학동에 가서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고 했더니,

정 선생님도 거기에 머물면서 2년 정도 글공부를 한 적도 있다고 술회했다.

하동 향교에서도 운영위원으로 일을 하신다고 하니 하동의 한문학을 이끌어가는 분이 아닐까 한다.

요즘 보기 드문 인재가 아닐까? 아내도 내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재미있었다고 했고,

명예 최참판님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했다. 아내의 인물 평가는 언제나 정확했다.

 

최참판댁 뒷채에서 평사리 문학관으로 연결되는 숲길이 돌담과 함께 은근한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밤꽃 향기 자욱한 섬진강길을 따라 화개장터까지 오니, 소설 '역마'가 떠오른다.

엿판을 들고 다니면서 장사를 했던 주인공 성기의 상행위가 현대의 화개장터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격에 어울릴까? 매실을 파는 가게들이 우선 눈에 많이 뜨이고,

각종 한약재들이 즐비하게 하얀 종이 위에 이름을 내 걸어놓고 언제든지 팔려나갈 준비를 마쳤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란 조영남의 노래가 연상된다.

 

가수 조영남이 작곡한 노래 '화개장터'의 노랫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와 닿는다.

지역 감정을 부추겨서 선거판에서 승리를 거머쥔 비겁한 정치인들의 꼼수를 조롱이라도 하듯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는 오늘,

비록 파장 무렵의 방문이었지만 아늑한 평화로움으로 내 가슴에 남았다.

'사진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산의 산막이 옛길  (0) 2012.06.10
구례 운조루, 곡전재  (0) 2012.06.06
비봉산 자락을 오르다가  (0) 2012.06.03
경상북도 환경연수원  (0) 2012.06.01
2012 진로진학상담교사 컨퍼런스 참여 모습들  (0) 2012.06.0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