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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2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1. 1. 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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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건축물 무량수전 오른쪽 모퉁이 처마밑에서 쳐다본 장면,

 서까래, 도리, 겹처마, 기둥머리의 연결 장면을 한번 보세요.

빈틈없이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고는 지붕의 엄청난 하중을

어떻게 오랜 세월 버텨냈을까 싶습니다.

 

앵글을 조금 내려서 기둥에 초점을 맞췄어요. 배흘림기둥, 엔타시스 양식의 전형이 보입니다.

 

보물 249호, 부석사 3층석탑의 그 장중한 맛에 자꾸 눈길이 갑니다.

 

석양에 비치는 무량수전의 전경, 한옥지붕의 유려한 곡선미는

바로 이 무량수전의 지붕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뿐히 솟아오른 지붕끝의 부드러움은 무엇을 닮았을가요?

 

국보 19호, 조사당.

무량수전에서 동북쪽으로 100미터 가량 오르면 보이는데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는 곳입니다.

의상은 절 창건 후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화엄사상을 전하며 제자를 길러냈다고 합니다.

1918년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며 우왕 13년(1377)에 건축되었다고 하며

순수한 고려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조사당 처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전설의 꽃 선비화(禪扉花, 골담초)로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아 자란 것이라 하고

닭장 같은 철망으로 보호하고 있는데, 보기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법당 바로 오른쪽 반을 다 차지하고 있어서 보기가 민망하다할까요?

차라리 적당한 공간으로 옮겨 심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조사당에서 내려와 다시 무량수전을 바라보니 하늘빛에 어울려

기둥 사이 찰방 위의 노란 빛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 옵니다. 관광객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절집의 마당이 조용하고 한적해졌습니다.

 

아내는 안양루 난간이 편하고 좋다면서 기대서서 하염없이 주변을 감상하기에 바쁩니다.

 

무량수전의 네 자 글씨는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온 적이 있는데

몇달 뒤 귀경길에 들러 '무량수전'이라 휘호한 것을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안양루 안쪽에 서서 속세인 아래 세상을 굽어보면

온 세상이 부석사의 정원처럼 느껴집니다. 안양루 중수기에 보면,

'몸을 바람난간에 의지하니 무한강산이 발 아래 다투어 달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니

넓고 넓은 건곤(乾坤)이 가슴속으로 거두어들어오니 가람의 승경(勝景)이 이와 같음은 없더라'

이런 기록이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천왕문을 내려 일주문까지 내려가다 보면 탱자나무 울타리 안으로 과수원이 하나 보입니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지려할 즈음, 몇몇 사람들은 저녁노을 사진이라도 찍으려는 듯

카메라 둘러메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유홍준 교수도 대부분의 절은 아침에 찾지만

부석사만큼은 반드시오후에 찾아간다고 하던데 그 진면목을 오후에야 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전략)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우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고 최순우 님의 글 중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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