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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럽다. 애들아,

아이들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0. 12. 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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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우리반에서 아침 조회를 할 때의 장면을 곱씹으면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그냥 넘어가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안 되겠다.

종례할 때, 다시 한번 꾸지람을 하려다가 참고 그냥 보냈다만

어제 하루종일 마음이 찜찜해서 견디기가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얘들아, 정말 실망스러웠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거니?

9시 24분 경, 우리반 바로 밑층의 2학년 교실은 1교시 시험 중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교실바닥을 쾅쾅 구르면서 집단행동을 했어. 맞지?

내가 조회를 마치고 교실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곧바로 보여준 행동이었어.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울리던 발구름소리였는데, 그래도 되는 거냐?

감정의 표현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까? 참 기분이 나빴어.

후배들이 얼마나 놀랐겠으며, 동시에 선배들에 대한 노여움이 얼마나 컸을까?

선배들이 미쳤나 다들 왜 저럴까 하면서 순간적으로 얼마나 저주했을까?

선배들한테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다는 엄청난 불쾌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곱씹어보면 담임으로서도 참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러분들한테 애써 한 말들이 철저하게 무시당한 느낌이었지.

수능 점수 발표 이후의 3학년 전 학생들의 등교조치에 대해

그 배경도 얘기를 했고, 여러분 편에서 선생님들도

건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도 분명히 했는데

내가 건네는 말을 끝까지 듣지는 않고, 전하는 말의 일부만 듣고는

오해를 해 버린다거나 담임을 향해 언성을 높이기까지 하면서

온갖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서 성숙지 못한 졸렬함을 그대로 드러냈어.

순간적으로 우리반 아이들이 이런 놈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불쾌했다.

그러나 참고 끝까지 말을 했던 것인데, 여러분들의 반응은?

기가 차서 말하기가 힘들 정도였지. 정말, 너무 실망스러웠다.

심지어는 담임이 여러분들을 위해 말없이 해 왔던 일들이

후회가 될 정도로 극도의 배반감을 느꼈다고 표현한다면?

 

역지사지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함이 있어야 할 고3의 나이인데,

철저하게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여러분들,

수능 이후, 3교시까지만 하고 조기 귀가시켜 주는 것만 해도

나머지 시간을 개인적으로 적절히 활용하라는 배려로 생각을 한다면

오히려 미안해 하고 학교 당국에 고마워 해야 하거늘,

마치 조기 귀가가 당연한 것이고, 권리처럼 받아들여서야 될까?

학교를 등교하게 한다고 선생님들을 잡아먹을 듯이 대해도 된단 말인가?

사리 판단을 잘 하지 못하는 후안무치한 학생들이 많아지는 요즈음,

그 절망감 때문에 많은 선생님들이 교단에 서 있기 힘들어 하고 있음을 아는가?

 

나는 여러분들이 좀더 겸손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감히 누가 우리를,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한단 말인가?' 이런 오만한 태도보다

'우리는, 나는 아직 학생이다. 그래서 어른들의 가르침을 새겨 들어야 돼.'

이런 겸손한 태도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태도야말로 자신을 성숙시킨다고 나는 믿는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 또한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공부를 잘 해서 나중에 높은 지위와 명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은 커녕 오히려 해를 끼치고 마는 존재가 되고 만다면

그 사람은 대중의 지탄을 면치 못하게 되고,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보다 못한 형편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앞으로 대학 생활을 또 계속해야 하는 여러분들,

담임이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왜 담임은 이런 당연한 말을 시시콜콜히 하고 있을까, 노파심?

 

12/11 저녁에 담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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