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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대본 - 당신 함께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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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람별(논강) 2021. 4. 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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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함께 가는 길

 

 대본 각색/ 이권주

 

등장인물

A(가수),

B(동생),

C(B의 아내),

D(작곡가, 기타리스트)

 

1

별다른 무대장치가 없어도 좋다. 그저 걸터앉는 의자 두세 개면 족하다. (E)초인종 소리와 함께 조명이 밝아지면, A의 목소리 들리면서 누워있던 B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뭔가에 열중하던 C도 깜짝 놀라 일어선다.

 

A: 다들 식사는 했는가? (일어나 앉은 동생을 바라보며) 동생은 어찌 그리 무심해여? 내가 곡 하나 써 달라고 언제 부탁을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냐구?

B: (머리를 긁적이며) 누님요, 그게 어디 쉬워유? 작곡가 친구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지 요즘 살이 쪽쪽 빠지고 있다고 하네요.

C: (A한테 가까이 다가가면서) 형님, 전 번에 보니까 노랫말이 아주 좋던데, 그거 어느 분께서 써 주신 겁니까?

A: 궁금해? 내가 아주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써 주셨지. 알다시피, 내 젊은 날이 파란만장하지 않은가? 그런 삶을 글로 남겨보고 싶어서 수필 공부를 시작했고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해 보았는데, 그것을 지켜본 선생님께서 나를 잘 헤아리고는 노래 가사로 만들어 주신 거야.

C: 형님의 노래 솜씨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당신만의 노래가 아직은 없으니 이 기회에 제대로 된 노래 하나 챙겼으면 참 좋겠습니다.

A: 여하튼, 날 이해하고 감동을 주는 그대가 최고여. 올케, 지난 여름 나한테 들려준 시낭송 너무너무 좋던데, 날 위해 다시 한번 들려 줄 수 있을까? (음악과 함께 조명의 변화가 일어나고 C의 시낭송, 김재진 시인의 ‘살아있어서 감사’가 이어진다.)

C: 안 날 줄 알았는데 새순이 나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파랗게/ 산천을 물들이네/ 아픈 세상살이 이와 같아서/ 바닥인 줄 알았는데 더 내려가네/ 다 내려간 줄 알았는데 창이 뚫리네/ 겨우 열린 창 틈으로 먼 하늘 보며/ 때로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 살아있어서 감사// (시낭송이 끝나면 다시 조명 변화와 함께 대화 모드로 바뀐다.)

B: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하는 모습, 잠시 기다리다가)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작곡가 선생, 요즘 많이 바빴지? 그나저나 작곡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 거의 다 됐다고?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정말 고생 많았네. 우리 누님이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렇지 뭐. 여하튼 자넬 존경하지 않을 수 없네. 화이팅! (조명 아웃)

 

 

2

(M) 음악이 흐르다가 조명 다시 들어오면

 

B: 누님, 바위에 이끼 낀 것 많이 봤지요?

A: 뜬금없이 그건 왜 물어?

B: 자형이 10년 전에 돌아가신 뒤, 4남매 챙기면서 너무 어렵게 살아온 누님 모습이 꼭 바위에 낀 이끼 같아서요. 누님의 이미지를 닮은 바위이끼라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김윤현 시인께서 쓴 시인데, 한 번 들어 보세요.

(남녀가 번갈아 가며 낭송한다. 녹음처리가 효과적이다.) 산다는 게 뭔가요? /신발처럼 가장 낮은 자세로 바위에라도 가까이 다가서는 일이제./ 불편하지 않냐고요./ 발 디딜 수만 있으면 살만하제./ 발이 어디 있어여./ 몸 안에 숨겨 두었제./ 공갈치지 마셈./ 미물들에게는 안 보이제./ 그럼 비가 오지 않으면 어짼다요./ 죽은 듯이 견디제./ 비가 내리는 날이면 금방이라도 푸른 말씀이 될 성싶다/ 저 수행, /수리수리 유구하겠다.

A: 그런데, 시가 좀 어려운 것 같다.

B: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살아온 누님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지요. (물끄러미 누님을 바라보며) 누님, 제 마음 알지요?

A: 존경하는 선생님한테서 노랫말 받고, 동생 친구인 작곡가님한테서 곡을 받고, 동생의 낭송시 선물까지 받고 나니 좋긴 좋은데, (말끝을 흐리며) 오늘도 난 마음 한 편이 허전해. 내 곁을 떠나간 남편은 아직도 하늘에서 날 지켜보고 있겠지.

B: 누님, 아직도 자형이 쓰던 휴대폰, 버리지 않고 갖고 있어유?

A: (정색을 하면서) 동생, 그렇게 말하면 많이 섭섭하다. 비록 오랜 휴대폰이지만 충전만 하면, 날짜와 시간이 남편 숨결처럼 고스란히 살아난단 말이야. 잠자리에서도 머리맡에 두고 있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고 말걸.

B: 누님, 어렵게 살아온 과거는 너무 많이 생각지 말았으면 해요. 자형도 이제는 잊을 때가 되었다니까요. (조명 아웃)

 

 

3

(M)조용한 음악과 함께 조명 들어오면, 무대 반대 편에서 기타를 매만지는 D의 모습이 보이고, B는 책을 읽고 있다. 무대복으로 갈아입은 A는 금방이라도 공연에 들어갈 수 있는 태세다.

 

D: 맨 처음 친구가 작곡을 부탁했을 때 쉽게 수락하고 받아들였습니다만, 누님의 삶이 녹아든 노랫말을 받아들고는 얼마나 신경이 쓰였는지 몰라요. 며칠을 끙끙 앓았습니다.

B: 우리 친구가 노랫말 하나하나에 우리 누님의 이미지에 맞는 가락을 넣으려 애를 쓴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누님을 위해 큰 선물을 했네요. 친구야, 고맙다.

A: 우리 작곡가님, 덕분에 이렇게 곡까지 받고 보니 감개무량하고. 제 마음을 너무 잘 헤아려줘서 고마워요. (노랫말을 적은 종이를 들고 B와 C가 시낭송 하듯 천천히 읽는다.) 구름처럼 살아온 길 서리서리 사연 많아도/ 당신과 손잡고 함께 온 길이라 행복했어요/ 긴긴 세월 길도 눈앞인 듯 가깝기만 했던 길/ 고마워요, 긴 세월 모두 행복이 되게 하는 당신// 바람처럼 살아갈 길 굽이굽이 멀고 험해도/ 당신과 손잡고 가붓이 정답게 갈 수 있다면/ 먼먼 인생길도 꽃보라 사랑이 피어나는 길/ 고마워요, 먼먼 길 모두 꽃길이 되게 하는 당신//

B: 누님의 심정과 처지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그 사연 많은 세월도 잘 참아냈던 누님의 삶을 표현했고, 누님의 앞길을 꽃길이 되게 해주기를 비는 마음을 잘 담아 놓은 것 같습니다.

A: (자리에서 일어나 D를 바라보면서) 쾌율 선생이 작곡한 이 소중한 작품, 다음 무대에서는 가수로서 나의 노래로 정식 발표할 것을 약속드리고 다시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관객석을 향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는 연습 삼아 이일배 작사, 오재화 작곡, 윤진희 노래로 작은 발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와 작곡가가 기타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한다. 노래가 시작되면 B는 자연스럽게 퇴장하면 된다.)

 

구름처럼 살아온 길 서리서리 사연 많아도

당신과 손잡고 함께 온 길이라 행복했어요

긴긴 세월길도 눈앞인 듯 가깝기만 했던 길

고마워요, 세월길 모두 행복이 되게 하는 당신

 

바람처럼 살아갈 길 굽이굽이 멀고 험해도

당신과 손잡고 가붓이 정답게 갈 수 있다면

먼먼 인생길도 꽃보라 사랑이 피어나는 길

고마워요, 인생길 모두 꽃길이 되게 하는 당신

 

서서히 조명 아웃 되면서 분위기에 걸맞는 (M)음악이 흐르고, 다시 조명이 밝아지면 네 명의 배우가 무대 앞으로 나와 관객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다. 계속 음악은 흘러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