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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얼빈가/ 안중근

작가들의 세계

by 우람별(논강) 2009. 10. 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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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歌/ 안중근


대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뜻을 모아 어려움을 당하리로다.

시대가 영웅을 만듦이여

영웅이 시대를 만들도다.

북풍이 차고 싸늘함이여

내 피는 불같이 뜨겁도다.

강개한 마음으로 떠나감이여

좀도둑을 반드시 죽이리로다.

나의 모든 동포들이여

부디 공업을 잊지 말지어다.

만세 만세를 부름이여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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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탕- 탕- 탕-’ 7발의 총성이 하얼빈시 중심가에 위치한 역 플랫폼에 울렸다. 세 발의 총알이 폐와 복부에 박힌 이토 히로부미가 나무토막 넘어지듯 쓰러졌다. 꼭 100년 전이다. 다음날 27일자 ‘하르빈’이란 러시아 신문은 ‘노예로 전락한 조국으로 인해 모욕을 당한 한국인의 정조준 된 탄환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정복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토 공을 쓰러뜨렸다’고 보도했다.

 

 그해 1월 안 의사와 동지 11명이 왼손 약지를 끊어 구국 단지혈맹을 맺고 동의단지회를 결성, 조국의 독립 회복과 동양평화를 맹세한 지 9개월 만이었다. 안 의사의 브라우닝 7연발 권총에는 약실에 한 발, 탄창에 일곱 발 정확히 8발이 장전됐다. 그것은 ‘빈틈없이 장전된 분노!’ 그 자체였다. 거사 직후 러시아 헌병들에 의해 체포된 안 의사는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세 번 외쳤다.

 

 이 시는 조선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쓴 것으로 추정되며, ‘장부가(壯夫歌)’와 함께 전해진다. 오늘부터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독립을 넘어 평화로’란 이름의 특별전을 통해 안 의사의 유묵과 관련 사진들이 공개되기도 하는데, 보물로 지정된 유묵이 무려 여섯 점에 이를 만큼 명필이었던 서예가이자 사상가인 안중근의 면모를 간과할 수 없다. ‘나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爲國獻身軍人本分)’를 비롯하여 ‘어질지 않은 사람은 곤궁에 처했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한다(不仁者不可以久處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경계하고 삼간다(戒愼乎其所不睹)’등 논어와 중용의 경구들을 주로 썼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들과 옥중 집필한 '동양평화론'의 사상적 가치,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세계 최초의 블록경제론을 제시한 경제학자로서의 면모도 제대로 평가받아야겠다. 안 의사는 일본이 러일전쟁의 전리품으로 차지한 뤼순항을 중국에 돌려준 뒤 이를 개방항구로 삼아 동양평화회의 본부와 은행을 설립하고, 아시아 3국의 주요 지방에 은행지점을 내어 공용화폐를 널리 보급하여 산업발전을 함께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밖에 교육운동, 종교운동 등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무엇보다 대한국인 안중근의 기개와 그의 '거룩한 손'은 특히 남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울컥해진다. 뤼순 감옥에 수감된 후 조사 받는 도중에도 당당했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사형집행 앞에서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청을 높였던 그를 생각하면. 거사 5개월 뒤 32세의 나이로 장렬히 순국한 안중근은 그저 독립운동가, 의사가 아니라 우리에겐 실로 엄청난 존재이며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ACT4

 

출처 : 바람재 들꽃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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