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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외삼촌 장례식, 그리고 상주 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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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람별(논강) 2017. 5. 1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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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외삼촌께서 돌아가셨다. 지병으로 고생을 하셨지만 주무시다가 그만......

비록 아무도 임종을 못했지만 큰 고생 안 하시고 조용히 세상과 하직을 하셨다.


고인의 돌아가심을 안타까워하는 자손들의 오열 속에서

처외숙부이신 철성이씨 고 이종남 님께서는 문중 산에 고요히 묻히셨다.

지방마다 장례문화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안동식 장례문화에 관심을 갖고 시종일관 지켜보았다.

 


권오일 전 국회의원도 장지를 찾아 조문을 하고 있다.

 


장지에서 상주께 인사를 하고 먼저 하산했다. 길가의 꽃 양귀비도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붉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처형과 우리 부부는 처외숙부가 자주 가던 매운탕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아내 친구의 조카가 경영하는 카페인 '아베뉴230'에 잠시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때 또 하나의 부음이 들려왔다. 포항교육장 류 선배님께서 모친상을 당했다는.....

상황이 상황인만큼 포항까지 문상갈 수 있는 형편은 못 되고 친구인 우교장에게

대신 조문해 줄 것을 부탁하고 계획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강렬한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상주 사벌에 있는 퇴강성당을 찾았다.

1954년 건립된 건물이라고 한다. 상주에서는 제일 먼저 지어진 성당이다. 

 






사벌면 퇴강리 옆마을은 매호리란 동네다.

이곳은 조선 인조때 승지를 지낸 이재 조우인(曺友仁) 선생이

낙향해서 음풍농월하면서 살았던 곳이다.

그의 후손이 만들어 세운 어풍대(御風臺)인데

그 뒤에 새겨져 있는 아래 글을 잘 읽어 보시라.

 




조선 인조 때 조우인은 매호별곡(梅湖別曲)을 남겼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총 178구이고, 주된 음수율은 3.4조다.

 

이재(巸齋) 조우인은 1588년(선조21)에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고,

160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1616년(광해군8)에는 함경도경성판관을 지냈다.

1621년에는 제술관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잘못을 풍자했다가 그 글로 말미암아 3년간 옥에 갇혔다.

인조의 등극으로 풀려나 상주(尙州)의 매호(梅湖)에서 은거하며 여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