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흥선대원군 묘, 광해군 묘

우람별(논강) 2012. 5. 6. 19:26

 

마석 모란공원 가까이 흥선대원군의 묘가 위치해 있었다. 어찌 들르지 않으랴.

입구에서 능까지 찾아가는 길은 차를 몰고 들어가기에는 좁으니 천천히 여유있게 걸어들어가야 어울린다.

  

능이 생겨나게 된 내력, 고인의 삶을 기리는 내용의 신도비일 것이다.

 

큰글씨로 '國太公園所'라고 전면에 쓰여졌고, 작은 글씨로 '大韓光武九年 立'이라 뒷면에 쓰였다.

 

장명등을 중앙에 놓고 찍어본 대원군의 묘

 

망주석 앞쪽으로 문인석을 좌우 한쌍 배치했다. 한분은 미끈한 미남인데,

맞은 편의 문인석은 얼굴이 파손되어 시멘트로 메꿔놓고 모양을 갖췄다.

 

고종의 아버지 이하응(1820-1898)이 묻힌 곳이다. 대원군의 묘는 원래 1898년 고양군 공덕리에 장사지냈다가 1908년에 파주군 대덕리로 천봉하면서 흥원(興園)으로 격상되었다 이후 1966년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

 

 

귀부의 입 부분도 누군가 훼손을 해놓아서 긴급 수리를 한 흔적이 보인다.

언제 일어난 사건인지는 몰라도 문화재 보존의식이 절박하다.

 

광해군묘는 영락교회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지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광해군묘(사릉)는 석물이 없었다. 대군의 예에 따라 장례를 지낸 결과라고는 하지만, 너무 초라하다는 느낌을 준다. 비록 연산군과 함께 폭군으로 분류되긴 했으나 외교에 능해서 금나라(청)의 위협에도 현명하게 잘 대처해서 국가의 안정을 도모한 현명함을 보였던 분이시다. 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나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인조 19년(1641)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