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께서 점지한 땅,
월요일, 날씨가 매우 화창하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다.
온몸이 욱신욱신 쑤시고, 허리를 굽히지 못할 정도로 굼뜨고 부자연스럽다.
그저께부터 어제까지 하루 종일 묘지에 쓸 땅에 잔디 심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까지 총동원해서 노동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나저나 어제 심어놓은 잔디가 잘 살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오늘이나 내일쯤 비라도 조금 내려주면 좋겠지만.....
워낙 생명력이 강한 잔디라서 괜찮겠지?
어제 세 집안에서 각각 두 명씩 참가해 총 여섯 명이 하루종일 작업한 결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8시간만에 잔디심기 일을 다 끝냈다.
들어간 비용 80여 만원은 세 집이 똑같이 나눠서 계산하자는 외삼촌의 명령에
27만원씩 배분하는 것으로 했다. '잔디 + 나무 + 식사비용' 의 결과다.
나는 외삼촌과 외종사촌 미숙이와 그저께 하루 먼저 충주에 가서
주덕면소재지에 있는 묘목집(신라조경)에 들러서 잔디와 나무를 샀다.
잔디 60평(평당 7,000원) 정도, 주목 2그루, 영산홍 30, 회양목 30그루가 그것이다.
오후에 소태면 봉은사 아래에 있는 묘터로 배달해 줄 것을 부탁하고,
내 고향 엄정면에 들러 돼지고기와 술을 합쳐 80,000원어치 정도 사서
우리 어머니의 고향, 양천허씨의 집성촌 소태면 오량마을로 갔다.
오랜 세월 낯익은 거리라서 그런지 갈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외삼촌의 죽마고우이면서 그 아랫동서인 영진 아재는 집에 없었다.
워낙 일거리가 많아서 낮에는 집에 쉴 뜸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게 실감난다.
집에서 산쪽으로 조금 떨어진 농장에 들르니 부부가 함께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몇 백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는 영진 아재 부부이니 그 관리가 오죽 힘들까 싶다.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농장을 슬며시 빠져나왔다.
오후 작업에 필요한 장비(전기톱, 괭이, 삽, 호미)를 영진 아재한테 빌려서.
봉은사 아래 위치한 묘터는 전망이 탁 트인 곳이라서 유택으로는 명당 자리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살아 생전에 나 죽으면 이곳에 묻으라 했다는 곳인데
사정이 여의찮아 당신께서는 또 다른 명당, 웃말 양지바른 곳에 남편과 함께 누워계시고,
그 바로 아랫자리엔 간암으로 일찍 요절한 맏아들을 발아래 품고 계신다.
당신께서 묻히기 위해 점지해 둔 땅엔 대신 두 따님과 막내 아드님이
장차 이 세상을 뜨게 되면 묻힐 부지로 확정을 하고 그 외손자들이
그 부지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입히는 작업을 하기로 한 것을 알고나 계실까?
묘지 주변에는 굵은 참나무 한 그루가 눈에 거슬렸다.
한 여름이면 가지가 무성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겠지만
묘터엔 응달이 그다지 반가운 게 아니라서 일부를 제거해 버리기로 했다.
고로쇠나무 한 그루와 제법 굵은 참나무 한 가지를 전기톱으로 잘라냈다.
나무를 자를 때 위험천만한 경우가 많이 있지만,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기어코 하고야 마는 외삼촌의 강한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약속한 대로 잔디와 나무들이 현장에 배달되었다.
잔디심기는 내일 6명(범주, 장원, 승원 포함)이 함께 하기로 하고
오늘 오후엔 주목 두 그루를 묘터 좌우에 중심을 잡아 세워두고
주목과 주목 사이엔 측백나무10그루를 적당한 간격으로 심었다.
뒤쪽 돌 축대 사이엔 영산홍 40그루를 듬성듬성 자리를 잡아 주었고,
묘터 주변으로는 일정한 간격의 회양목으로 울타리를 삼았다.
구덩이를 적당한 깊이로 파고 뿌리에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꼭꼭 밟아주면 되니 작업은 비교적 쉬웠고, 금방 끝나서 홀가분했다.
특히, 외종사촌 미숙이는 힘이 남아도는지 참으로 열심이었다.
아빠를 닮아 농담도 잘하고 재치가 넘쳐서 늘상 보기가 좋다.
근데 서른 두 살이면 시집을 갈 법도 한데, 아직 애인이 없는 게.....
음식 솜씨 좋은 영진아재 부인께서는 저녁 상을 맛있게 준비해 주셨다.
청국장과 김치맛이 제격이었고, 목계에서 구입한 천 원어치 상추쌈은
푸짐한 고향 인심을 떠올리게 했고 마냥 싱싱해서 좋았다.
커다란 후라이팬에 구워서 건네는 삼겹살 고기맛은 최고였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고 마포함소아 근무 마지막날이었던 동생은
서울에서 늦게 출발 밤 10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서야 캄캄한 오량마을에 도착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찾아올 주소를 입력했지만 이상한 곳을 가르켜주어
곧장 찾지를 못하고 밤길에 고생을 좀 했단다.
외삼촌은 며칠 전, 술병으로 고생을 해서인지 술은 거의 안 마셨고,
영진아재는 원래 술을 못하신다 하고 아주머니는 막걸리 한 잔만 하셨다.
서울 동생이 도착하기 전에는 미숙이와 내가 홀짝홀짝 한두 병을 비웠고,
동생이 도착해서 늦은 식사를 하고나서 내리 세 병을 더 마시니
옆에서 지켜보시던 외삼촌께서 더 이상 술은 마시지 말라고 하신다.
다음날 새벽부터 일을 해야 하는 주인장 영진아재를 생각하고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늦은 시각까지의 술자리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당연했다. 이렇게 숙박신세까지 지는 것도 고맙기 한량없는데
마음씨 좋은 영진아재를 힘들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고 말고!!
마음 같아서는 한두 병 더 마시고 싶었지만 절제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피곤한 탓인지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덕분에 새벽 일찍 잠을 깼다.
두 형제의 코고는 소리에 외삼촌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외삼촌과 동생,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영진아재와 함께 농장에 들러서
개들의 먹이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체험 삶의 현장'을 실감했다.
동생은 엊저녁 새끼를 낳았다는 에미의 처연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는지
호기심으로 찾아갔던 농장에서 결국 동생의 어두운 표정만 볼 수밖에 없었다.
영진 아재는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해서 조만간 업종 전환을 꿈꾸고 있단다.
짐승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
아침 식사를 하고 차를 한잔 하고 있는데, 장원 동생한테서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시간에 맞춰서 봉은사 아래로 가니 두 형제(장원, 승원)가 대기하고 있었다.
간단히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하고 장갑을 끼고 작업장에 들어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없이 일을 시작, 나는 괭이를 잡고 얕은고랑을 파기 시작했다.,
장원 동생은 나일론 줄로 묶어놓은 잔디를 일일이 풀어서 쌓아놓고
승원 동생은 정사각형의 잔디를 반으로 자르는 작두 작업을 시작한다.
범주 동생과 외삼촌은 잘라놓은 잔디를 들어다 얕은고랑에 심는 작업이다.
감독이 필요없을 정도로 알아서들 잘 하니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
유일한 여성인 미숙이도 남자들 못지않게 그 몫을 다했다.
외삼촌께서는 내일 모레가 환갑이시지만 조카들에게 모범을 보이셨다.
마음 같아서는 뒷짐지고 감독이나 하시면 될 일을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나 또한 같은 항렬 가운데는 최고참이긴 하지만 거드름을 피울 수 없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고, 그래서도 안 된다.
평소와 다르게 비교적 노동 강도가 센 작업을 해서 힘은 들었으나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잔디심기에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개인적으로는 농부로 돌아가는 첫 훈련을 한 것 같아서 흐뭇했다.
잔디 심던 날의 기념 사진 몇 장, 여기에 남겨 본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