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10년 뒤의 나에게

우람별(논강) 2011. 4. 4. 16:26

학생들에게 '10년 뒤의 나에게 조언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냈더니, 학생들이 나에게도 같은 주제로 글을 쓸 것을 요구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학생들과의 교감 차원에서 일단 써 보기로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보라는 의도에서 낸 숙제였는데, 그 숙제의 화살이 교사에게로 다시 날아온 셈이다.

 

제목 : 10년 후, 지금의 나에게

 

잘 계시는가? 작년 2월 정년퇴임을 하고 ‘청구서당’이란 간판을 내걸고 학생들을 새롭게 만나온 지 거의 1년이 지났구먼.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던 것이라 크게 어려운 것은 없으나 한문을 등한시하는 시대의 흐름 탓인지 내 서당을 찾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20년 세월, 훈장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 것이네. 소식도 전할 겸 아직 열정이 넘치는 그대의 모습 생각하며 안부삼아 몇 자 적네만 10년 아래의 나 자신에게 쓰는 글이라 느낌이 새롭구먼.^^

 

올해 구미고로 전근을 했다지? 첫해라서 다소 적응이 어렵지 않은가 모르겠네. 그래도 자네는 워낙 부지런하고 열정이 넘쳐서 어떤 어려움도 잘 견디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올해도 예외 없이 학급문집을 만들겠지? 요즘도 아침 일찍 등교해서 우렁 각시처럼 남몰래 담임반의 교실청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몰라. 그렇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지만은 않다고 동료들한테 몇 번 지적을 받았다고 했네만 그렇게 해서 즐겁고 행복감을 느낀다면 반 아이들에게 그것만큼 좋은 봉사와 서비스가 또 어디 있겠어? 여하튼 그대의 특별한 마인드는 남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점도 많다네. 다만 그렇게 하면서 누가 알아주기를 기대하거나 그대가 해 준 만큼 학생들이 알아서 잘해 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명심하게나. 봉사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대가를 바라는 것은 순수한 것이 못되니까 말일세.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당신의 진심을 알고 있으리라 믿네. 또 모르면 어떤가?

 

퇴임을 하고 나니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건강이라네. 자네는 비교적 지금까지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지만 나는 간혹 그대의 건강이 좀 걱정스러울 때가 있어. 언젠가 가슴을 자꾸 만지며 답답하다고 나한테 하소연한 적이 있지? 순간적으로 심장 질환 때문이 아닌가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좀 어떤지 궁금하네. 그 이후로 치료를 제대로 받았는가 모르겠구먼. 건강이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다는 거 잘 알지? 나이가 들수록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심장병 등 온갖 성인병이 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명심하고 운동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네. 자전거 타기, 하루 한 시간 이상 걷기 등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다 하면서 살게나. 운동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것이 더 좋겠지? 부부가 백년해로하려면 함께하는 운동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네. 더구나 출가해야 할 아들이 셋이나 있으니 애비로서 건강 지키며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일세.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것, 명심하게나.

 

자네는 참 행복한 교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30년 가까이 근무한 가운데, 경북의 명문교에서 주로 근무를 했으니 말일세. 후포고, 경주여고, 포항여고, 포항고, 다시 경주여고, 두호고, 구미여고 등, 열거된 학교의 면면을 봐도 정말 부러워 할만 하이. 그간 자네한테 배운 인재들이 그 얼마며, 그 감동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네. 발령 운이 정말 좋았던 것이지. 지금은 또 구미의 명문인 구미고에 발령받아 상큼한 1학년 학생들과 주로 만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네.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즐거움만큼 큰 축복이 또 어디 있겠어? 최근 몇 년간 부득이 입시위주의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대였기에 올해 1학년과의 만남은 또 다른 축복이라 생각하고 학생들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게나. 학생들로 하여금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글쓰는 기회를 자주 주는 것이 국어교사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우리 공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네. 그대의 열정과 순수가 통하는 분위기라면 참으로 좋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학생들에게 또는 동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면 유지하기가 어려울 테니,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좀더 치밀한 계획과 검토가 필요할 걸세. 백년대계인 교육의 원리가 어찌 변할까마는 요즘 분위기는 신자유주의 여파로 모든 영역이 경쟁을 통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남을 배려하거나 공동체를 생각하는 인간적인 면이 점차 사라지고, 철저하게 개인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정말 큰일이야. 심지어는 교사들도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강요받고 있지 않은가? 학부모나 학생, 동료들에게 평가되는 시스템이 이미 발동되어, 전국 곳곳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원성으로 들끓고 있지 않는가 말일세. 자네처럼 50살이 넘은 교사들은 뒤쳐질 가능성이 많아지지. 무엇을 기준으로 교사들을 평가할 것이며 그 평가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네. 어쩌다가 우리나라 교육이 이리 되었나 싶어서 한숨만 나오네. 나도 중도에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던 교직생활이었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끝까지 교단을 지킬 수 있었네. 또 다른 나인 자네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천명했다시피 그대의 존재가치가 유지될 수 있는 한, 학생들의 도우미 역할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으리라 믿네.

 

사랑하는 후배 논강 이권주, 우람별 선생님, 앞으로 남은 9년의 교직 생활 잘 정리하길 바라오. 가까운 친구인 서정우, 우동식 선생은 얼마 전 교장 연수를 받았고 머지않아 학교의 관리자로서 일을 시작하겠지만 자네도 늘 해왔던 방식대로 학생들과의 소통을 먼저 생각하면서 건강하게 가르칠 수 있다면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야. 아무쪼록 지금까지 잘 지켜왔던 교단, 막바지 정리를 잘해서 '아름다운 퇴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나도 그때까지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도울 테니 힘내시오. 우람별 선생님 아리아리!!

 

** 나의 정체성(나름대로 표현해 보기) 

   나는 성실하고 열정적인 교사다. 학생들의 삶을 존중하면서 그들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싶은 사람이다. 교육민주화와 참교육(민족, 민주, 인간화교육) 달성을 위해 자그마한 힘이나마 보태려 해 왔지만 아직도 미완성 상태임에 실망하고 있다. 앞으로도 불의와 타협하는 일 없이 교사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소신껏 살고 싶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