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하게 될 학교에 대한 단상
2011학년도 3월 1일부터는 구미고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될 것 같다. 어제 처음으로 임시 교무회의가 있다고 해서 새로 발령받은 선생님들과 함께 9시 50분 경 교무실로 갔다. 교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교장실로 내려가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를 듣고 동창회에서 주는 기념선물도 받고 교무실에 다시 올라가 회의에 참여했다. 교무부장은 회의를 시작하면서 새로 오신 선생님을 대표해서 날 보고 인사를 좀 하란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인사를 하라니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생각나는 대로 짤막하게 인사말을 했다.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나 싶었는데 옆에 앉아있던 유선생이 참 듣기 좋았다고 하니 기분은 좋다.
부장 임용과 학년 담임 발표가 있었는데 나는 1학년에 배정되어 다행이었다. ‘국어과 교사 가운데 내 나이가 제일 많다는데 담임 배정에서 제외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했는데 일단 담임을 맡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오래 근무해 왔지만 담임의 업무를 맡지 않으면 특별히 할 일이 없음을 안다. 뒷짐지고 편하게 지낼 나이는 아직 아니라는 생각이다. 퇴임하는 날까지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알고 보니 나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3학년 부장은 나에게 3학년 담임을 맡기고자 했고, 교무부장은 작년 국어과 김○판 선생님이 맡아서 하던 아주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맡겨야 하기에 비담임을 권했다. 나를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초빙을 성사시킨 교무부장의 뜻을 받아들이자니 개인적으로 좀 섭섭해서 전화를 받고 한나절을 고민하다가 1학년 담임을 맡고 싶다는 마음을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그 이후 별 반응이 없어서 참 궁금했는데 발표를 들으니 속이 후련했다. 1학년 부장을 맡은 류선생님도 오늘 아침에야 내가 1학년 담임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하니 그 고민을 가히 알만 했다. 마침 1학년 담임을 맡기로 했던 국어과의 마선생님이란 분이 도저히 담임을 맡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고 해서 그 분이 김○판 선생님이 하던 일을 맡고 1학년 담임을 내가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고등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수업, 소통이 이루어지는 수업을 하려면 그래도 고1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을 늘 해 왔기 때문이다.
1학년 교무실에서 1학년 담임들끼리 간단히 회의를 하면서 반을 정하고 담당 업무를 정했다. 나는 1-1반 담임이고, 생활지도 업무를 맡았다. 1학년 담임 중에 동고동락할 국어과 교사는 나를 포함해서 셋인데, 교직경력 3년차, 12년차, 30년차의 배치다. 젊은 여선생님 두 분을 보니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학년부장을 맡은 류선생님은 구미여고에서 같이 근무했던 분이라 더욱 친근하다. 2년 선배님인데 덕을 아주 많이 쌓으신 분이시다. 등산도 좋아하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교사요, 소신있게 일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그 다음 서열은 바로 나란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세월이 그렇게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보다.
교무실 옆에 있는 남교사 휴게실에서 2011학년도 수업 배당 문제로 국어과 교사들 12명이 모두 모였다. 학년별로 3명이 담임으로 배치되고 3명이 비담임이다. 장시간 논의 끝에 개인별로 수업이 적절히 배당되었다. 나는 1학년 6개반(1~6반) 12시간 + 창재 2시간 + 고3 수업 5시간, 모두 19시간의 수업을 맡기로 했다. 또 교무부장과 나는 방송고 수업을 덤으로 또 맡아야 한다. 포항고 재직 시절, 방송고 수업을 4년 내리 맡아서 했던 추억이 있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주여고 제자인 박외경 선생님과 전교조에서 만난 성진남 선생님은 2학년 담임을 맡았다. ‘말과 여백’ 후배인 이규도 선생님은 고3 담임이다. 5년 연속이다. 완전 체질인가 보다.
친목회에서 제공하는 점심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전 직원이 모여 앉아 굴국밥 한 그릇을 먹는 자리이지만 나는 낯선 선생님들의 얼굴을 익히기에 바빴다. 20년 전 경주여고에서 근무했던 곽기근 샘의 얼굴도 보이고, 울진 매화중·종고 근무 시절에 초임 발령을 받아 3개월 정도 근무하고 떠났던 이상태 선생의 얼굴도 반갑다. 이귀향 선생은 구미여고에서 3년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는데, 또 근무를 같이 하게 됐다. 다 깊은 인연들이다.
1학년 교무실, 자리 배치를 받았는데 마음에 든다. 같은 과끼리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의미에서 국어과 선생님 세 분을 묶어 놓았다. 다른 과도 마찬가지로 배치를 했다. 잘 될 것 같다. 고1부터 개정교육과정에 의해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뀌었다. 국어교과서만 해도 16종이다. 16종 교과서에 수록된 시는 약 200여 편이고, 소설과 수필이 각각 80 편 정도 된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수학 영어는 교육과정이 비슷해 단원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국어는 교과서의 영향이 큰 편이다. 교과서가 학생들의 활동 중심으로 바뀌면서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야 함은 분명하다. 기존의 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읽기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새로운 학습방향이 분명한데,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 봐야 할 것 같다. 학교마다 교과서는 다르지만 어차피 국어과 교육과정의 핵심 내용은 모두 반영하고 있는 이상, 교과서 종수에 신경 쓰기보다는 스스로 한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국어능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리라.
근무하던 구미여고로 갔다. 마지막으로 챙겨올 짐이 있어서다. 4층 고3 교무실엔 아무도 없다. 아침에 들렀을 때는 최부장과 봉희 샘이 있었는데 어디 갔을까? 4년간 정들었던 교무실, 막상 떠나려니 기분이 이상하다. 책꽂이의 서류 몇 개, 사물함 위에 놓인 책, 참고자료 들을 빈박스에 챙겨놓고 사용하던 컴퓨터에 마지막으로 인터넷 접속을 해서 가입된 카페에 들어가 새로운 글이 올라왔나를 살피고 댓글 달고 빠져나와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봄방학이지만 고3 교실엔 학생들이 조용히 자율학습 중이다. 짐을 들고 구두소리 내면서 내려가려니 미안타. 어떤 녀석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방학 때 다섯 시간 정도 보충수업 지원을 해서 내 수업을 잠시 들어본 아이들이지만 별다른 정은 없을텐데……. 아마 다른 학교로 이동하는 선생님이라는 것쯤은 알았으리라.
다시 구미고 1학년 교무실로 돌아오니 류부장님이 새 노트북을 챙겨서 나에게 건넨다. 미리 가져가서 새학기를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냐면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신다. 정감이 넘친다. 첫느낌이 좋다. 아이들과의 좋은 인연을 기대하면서 입학식날을 기다려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