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만드신 도토리묵
오늘 점심은 아내와 함께 대구에 가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도토리묵으로 해결했다.
성주의 어느 야산에서 아들이 '목숨걸고' 주워 온
두세 되 정도의 도토리를 지난 금요일 어머니께 갖다드렸더니,
온갖 정성을 들여서 '아들 생각하면서' 묵을 만드셨다고 한다.
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퍼뜩 가서 먹어야했다.
어제 완성을 해서 부모님 두 분이 먼저 맛을 보셨고,
아들 내외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셨는지
어여 도토리묵 먹고 가라며 전화가 왔던 것이다.
사실, 지난 주 금요일 직장 동료인 유선생의 제안에
40여 년만에 처음으로 도토리 줍기를 해 본 것이다.
힘은 들었어도 어릴 적 추억과 함께 기분이 아주 좋았다.
곳곳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것이 굽히락펴락 운동도 되고,
가파른 산길도 마다않고 도토리 찾으며 신명나게 돌아다녔다.
목숨 걸고 도토리줍기에만 열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갑자기 그 무서워하는 뱀이라도 나타나면 어쩌나?
도토리를 줍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은 잠시뿐, 눈에는 도토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도토리를 주웠더니
제법 배낭이 무거워지고 해도 기울기 시작했다.
하산 길에 영지버섯도 몇 개 따고, 운지(雲芝)버섯도 땄다.
몸은 비록 힘이 좀 들었더라도 기분은 최고였다.
성주의 토박이인 유선생에게 감사하며.....
예상대로 어머니께서 만드신 도토리묵은 천하일미였다.
그리 두껍지 않게 채를 썰어서 간장양념을 좀 넣고
국물과 함께 김을 고명삼아 적당히 얹으면 완성이다.
맨처음에는 도토리묵의 그 소박한 맛을 좀 즐기다가
어느 정도 먹고 나서는 밥을 몇 숟가락 말면 묵밥이 되는데,
그 맛이 일품이고 얇게 썬 김치를 얹어서 먹으면 더 좋다.
아버지께서는 밥은 안 드시고 도토리묵만 드셨고,
나는 다 들고 조금 모자란 듯하여 아버지께서 남기신 밥까지 말아서
배불리 먹고 나니 어머니께서는 그저 흐뭇해 하신다.
아내는 너무 많이 먹는다면서 핀잔을 준다.
잘 먹고 죽은 귀신은 태깔도 좋다 했으니 괜찮다.ㅎㅎㅎ
어머니는 디저트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배와 사과를 깎아서 아들 내외한테 먹인다. 써비스 만점^^
한편으로는 서울의 둘째 아들이 못내 걱정이다.
엊저녁에도 새벽 3시까지 잠이 안 와서 애먹었단다.
"오십줄에 접어든 아들 걱정한다고 해결됩니까?
동생이 잘 알아서 해결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당뇨관리나 잘 하셔야 해요. 알았죠?"
"그렇긴 하다만 그게 어디 잘 되냐?"
아버지께서는 한동안 끊었던 술을 요즘은 또 드신다.
소주를 생각나는 대로 한잔씩 드시고 글을 좀 쓰다가
잠이 오면 주무시고 깨시면 글쓰다가 심심하면 또 한잔 하시고
케이블티비의 '야인시대'나 사극 '이산'을 즐겨 보신다고 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에 투고한 원고 '잃어버린 철새들의 군무'
워드로 타이핑해서 이메일로 대신 보내드렸지만 못내 찜찜하신 모양이다.
역시 원고는 육필로 써서 우송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시다.
몇 작품 더 투고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직접 원고에 쓰시겠단다.
그럴 필요없이 원고를 달라 헸더니, 그냥 당신 뜻대로 하신단다.
글씨 쓰시는 것이 옛날 같지 않아서 힘이 드셔서
워드를 치자고 한 것인데 기어코 고집을 꺽지 않으신다.
더구나 볼펜 글씨는 붓글씨와 또 달라 손의 떨림이 더 심하시다.
그럴 때면 소주를 한잔씩 해야 좀 덜하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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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기어코 도토리묵을 싸 주셨다.
우리 내외가 이제 가 봐야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면
어머니는 으레 함께 따라 나오시는데, 늘 외출 복장이다.
그 시간이 어머니의 운동(산책) 시간인 것이다.
때로는 아들과 함께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 혼자 1시간 정도를
금호강을 따라 걸으시는데 당뇨관리에는 최고다.
아버지는 아파트 생활이 참 싫어서 계사(鷄舍)라고 표현하시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아파트가 금호강 가에 위치해 있어서 너무 좋단다.
부디, 두 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