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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6개월의 교단을 떠나면서

우람별(논강) 2021. 8. 29. 20:50

화령중고 선생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코로나 상황이 워낙 엄중하여 글로나마 인사드립니다.

저는 1982년 3월 1일자로 교단생활을 시작했고

2021년 8월 31일자로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39년 6개월의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왜 그리 짧게 느껴지는지요?

퇴임 후 살아가게 될 시간은 또 얼마나 허락될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고 하는데, 요즘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간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끄럼이 남아있어 그런지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학생들과 호흡이 잘 맞아서 행복할 때도 있었지만 늘 부족했으니까요.

교사라면 수시로 겪게되는 갈등 상황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봅니다. 

 

돌아보니 그간 참 여러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고, 하고 싶은 활동도 소신껏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젊은 교사 시절,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에 소속되어 교육운동과 인연을 맺었고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한 이후 32년을 줄곧 조합원으로 살아 왔습니다. 

보람되고 영광된 시절, 회한과 좌절의 괴로운 시절도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30년간은 주로 일반계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살면서 입시교육에 허덕였습니다.

이게 아닌데 하는 낭패감에 괴로워하다가, 2012년 진로진학상담교사로 전과한 이후 

구미 사곡고에서 3년, 상주 화령중에서 지낸 6년 6개월의 시간은 

저에게 특별히 주어졌던 큰 선물같아서 보람이 매우 컸음을 고백합니다.

화령중이 교육부 농어촌 거점학교로 3년간 지정되어 예산이 많았고

연이어 또 3년간 경상북도교육청 '작은학교 살리기' 예산까지 지원되면서

학생들의 교내외 진로체험, 온갖 직업체험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점은,

화령중고 학생들은 물론, 저에게도 큰 성취감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간 물심 양면으로 도와 주셨던 교장, 교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모든 교직원 동료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의 여정을 만들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도 그간 개미처럼 살아왔으니 앞으로는 베짱이처럼 살면서

'인생의 멋'  또는 '위대한 멈춤'의 의미를 찾아보려 노력할 겁니다.

 

정년퇴임 기념으로 조그만 선물 하나 준비했습니다.

핸드드립커피 10개들이 한 통입니다만 제 순수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제 아내와 아들이 구미 형곡동에서 '커피온'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에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모든 교직원들께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담없이 받으시면 되고, 커피를 내려마실 때 느껴지는 맛과 향기는

선생님을 기억하려는 제 마음이라 생각해주시면 저도 큰 기쁨이겠습니다.

그 동안 많은 도움 주셨던 것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8/30 퇴임교사 이권주 올림

 

 

얘들아,

며칠 전 국어시간에 나한테 썼던 편지글 감동적으로 읽었다.

여러분들의 순수함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기에

선생님한테는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선물이었어. 정말 고마웠어.

환해지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단다.

아는 바와 같이 선생님은 2021년 8월 31일부로 정년퇴임을 맞아

39년 6개월 동안 지켜왔던 교단을 떠나야만 해.

화령중고에서만 6년 6개월 동안 근무했으니 참 오래도 있었다. 그치?

<진로와 직업>이라는 교과시간을 통해서 1주일에 1시간씩 만나왔는데,

9월 1일 이후는 또 다른 진로선생님이 오셔서 여러분과 만날거야.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또 만나고 하면서 사는 게

인생살이인지라 나(우람별)의 정년퇴임이 뭐 특별할 건 없어.

도도히 흐르는 인생의 강물은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니까.

 

그간 선생님이 초청해서 만난 직업인들이 참 많았지?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다양한 직업군을 만나 왔다고 봐.

다른 학교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우리학교만의 시스템이지.

직업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이 소개하는 직업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직업인으로서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진로를 선택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기대했었고

선생님은 여러분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단다.

 

화령중고 학생들을 만나면서 참 부러웠던 것이 있었는데 고백해도 될까?

전교생이 윈드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매주 2회, 2시간씩 악기를 배웠거나

아직도 그렇게 배우고 있는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부러워.

그런 시스템을 갖춘 학교는 주변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물단다.

나는 학창시절에 왜 그런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는가 하는 아쉬움인 거지 뭐.

불과 20년 30년 전까지만 해도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교육현실을 풍자하는 말이 유행했었지.

콩나물 교실(학급당 인원이 60명 정도)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많았어.

너무도 가난해서 도시락도 못싸오고 물배 채우던 학생들도 있었고.....

(이런 얘기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겠지?)

지금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아졌지. 시대가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초중고 무상급식은 물론, 중학교 의무교육(머지않아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 정착되었고,

여러 부문에서 교육 부분의 복지가 옛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거지.

당연한 것이라고? 맞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어.

그러나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 좋은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 부모님께도 선생님들께도 감사하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썼던 선배들께도 감사하고,

그래야 우리는 더욱 겸손 겸허해 질 수 있으니까.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얘들아, 선생님이 글을 쓰다 보니 길어져 버렸네.

정년퇴임을 하고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의 마지막 글이니만큼 잘 받아들였으면 해.

진로진학과 관련하여 많은 상담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선생님이었는데

그런 시간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아쉬움이 많아서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일부러 학생들을 불러서 상담하는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방문 상담을 기대하다보니 그렇게 됐어.

그러나 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젊었을 때나

정년퇴임을 하루 앞둔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만큼은 알아주었으면 해.

화령중고에서 만난 우리 제자들,  열심히 준비해서 진로 선택 잘 해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 잘 알제?

사랑한다. 애들아, 화령중고 화이팅!!

 

2021년 8월 30일 진로교사 이권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