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3박 5일의 타이완 여행

우람별(논강) 2017. 7. 29. 23:00

저녁 늦게 대구 국제공항을 출발해서 2시간 30분을 날아 대만 땅을 처음 밟은 시각, 한밤 중!

 타이페이의 타오위안 공항 밖을 빠져나왔을 때, 현지는 밤인데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무더웠다.

그러나 이미 예상했었기에 새삼스럽지는 않다. 아무리 더워도 여행에 대한 열정을 꺾지는 못하리라.

이번 여행에서 나의 관심사는 자연환경보다는 세계적인 박물관인 고궁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에 있다.

워낙 유물이 많아서 전시되는 유물을 매년 네 번씩 바꿔 전시해도 30년을 넘게 전시해야 한다니.....



TW 668편에실은 화물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건 하나가 터진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 안, 14명의 여행객을 맞아

현지가이드가 3박 4일간의 여행 안내를 맡아 처음으로 인사하는 장면이다.


나는 숙소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면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방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자신의 것과 똑같은 가방의 모양만 보고 별 생각없이 가져온 결과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렇다면 내 가방은 누가 가져갔을까? 이럴 땐 어떡허지?

틀림없이 내 가방을 가져간 사람은 황당해 하면서 공항에 연락을 했을 것이고.....'

나도 가이드한테 부탁해서 가방이 바뀌었음을 신고하고 택시를 불러서 공항으로

가 보려했는데, 공항에서도 분실 사실이 신고되지 않아서 가 봐도 소용없단다.

상대방이 공항으로 연락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데, 결국 다음 날 아침 다행히 공항을 통해

서로 연락이 되어서 가방을 되찾게 되었으니 가방 분실 사건은 짤막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치밀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함이고 일종의 치매 현상 같기도 해서 마음이 씁쓸하다.

택시비만 NT$600(24,000원 정도) 소비했으나 되찾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해 준 선배님들과 친구들에게 미안코 고마웠다. '예끼 이 사람, 정신차려!'


화련(花蓮)으로 가기 위해 이곳 타이페이역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단다.

우리나라의 서울역에 해당하는 곳인데, 차이가 나는 것은 사람들이 앉아서 쉴만한 의자가 거의 없다는 것,

쉬려면 땅바닥에 그냥 주저앉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

1891년에 완공된 이 역은 시내 MRT와 일반 버스, 타이완 기차, 고속철, 그리고 타이완 전역으로

운행되는 버스터미널의 종점이자 환승역으로 타이페이 교통의 허브인 곳이다.


이번 타이완 여행에는 두 분의 선배님과 두 명의 친구가 동참했다.

두 선배님은 작가회의 소속 시인이시고 교육계에 오래 몸담고 계시다가 올해 2월말에 정년을 맞았다.

두 달 전 정년퇴임 기념 필리핀 여행도 다녀오신 분들이신데, 이번 타이완 여행에도 함께해 주셨다.

왼쪽에서 두 번째 멋진 몸매의 사나이는 작년 이맘때 대마도 여행을 함께 다녀온 40년지기 친구이고

맨 오른쪽의 멋쟁이도 2001년 경주여고에서 만나 인연을 맺어온 국당 이상신 선생님, 등산애호가다

울릉도의 성인봉을 62번이나 오른 적이 있고, 지리산을 수도없이 종주한 이력을 자랑한다.


화련역, 여행객들은 타이루거 계곡 탐사를 위해서는 이곳을 꼭 거쳐야 한다.


타이루거[태로각,太魯閣] 계곡을 관광하기에 앞서 점심 식사를 먼저 했다.

38도, 56도짜리 고량주는 식사 때마다 국당이 직접 구입해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명예퇴임 이후 포항 주변에 700평 땅을 하나 사서 맨 위쪽에 여섯 평짜리 농막을 짓고

토목공사는 물론 밭을 개간하고 전천후 우물까지 마련했다는 전 수학교사 국당 선생은

이번 여행 끝날 때까지 술은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선언을 했던 거다.

잠도 10시간 이상은 자지 않고 우리들 여행의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서

추호도 소홀함이 없도록 역할을 다하겠다는 약속까지 술김에 하고 말았다.

아들 딸 모두 취직했고, 그냥 취직이 아니라 대박을 터뜨렸을 정도로.....

기분좋게 여행까지 합류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국당 선생이 마냥 부러웠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고, 마음 편히 쉴 수도 있고 얼마나 좋은가!

국당은 우리들의 축하를 받기에 충분했고, 그 좋은 기분 끝까지 유지하길.....^^


타이완의 동부해안가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치상탄[七星潭],

북두칠성이 잘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치상탄', 에머럴드빛 푸른 바다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저 구름 또한 여행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해수욕장으로 안성맞춤인 곳일 텐데 사람들이 거의 없다. '너무 더워서일까?'



덕천 선생이 찍어주는 사진 속에는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효도관광에 나선 구미 형남중 최선생님과

장차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귀여운 아들(초등학교 4학년)의 모습이 곱게 담겨있을 것이다.


국당 선생은 또 우리 5명을 포함한 동료 여행객 14명을 위해 망고 과일을 한아름 샀다.

충분히 맛볼 수 있도록 한턱 쏜 것이다. 박수가 우뢰처럼 쏟아졌다. 역시 국당 선생 최고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국당의 선한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멋진 친구!'



타이완 동부에 위치한 타이루거 국가공원은 험준한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대리석 협곡으로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생산되는 대리석은 가공되어 일본으로 주로 수출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일본에 대한 반감이 적단다.

오히려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반일감정이 심한 우리 민족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협곡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가 보인다. 九자 형으로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고 하는데 직접 걸어볼 수 없어 아쉽다.


연자구(燕子口), 제비집이란 뜻으로 깎아 내린 듯한 대리석 절벽에 생긴 구멍에 제비들이 둥지를 틀어서 붙은 이름이다.






 타이루거 입구에서 톈상[天祥]까지 총 20킬로미터 구간의 구불구불이어진 동굴터널,

계곡물로 인한 침식작용으로 생긴 협곡의 전경은 그야말로 숨이 멎을 정도로 감동적이다.

1950년대에 당시 총통이었던 장제스가 타이완 동부와 서부를 잇는 중형공루 도로 건설을 계획했다.

기계를 사용해 주변의 단단한 대리석 협곡을 그대로 뚫기에는 위험이 따를 것라고 판단해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장장 4년이란 시간 걸쳐 도로는 개통되었지만 그 동안

225 명의 인부들이 순직했는데 그들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장춘사(長春祠)>를 지었다고 한다.





타이페이에서 약 50분 정도 떨어진 숙소(금산해만호텔)는 온천식 호텔이었다. 거기서 이틀밤을 잤다.

105호 132호에 투숙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운 곳이기도 하다. 국당 선생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여행 2일째, 야류 지질공원과 지우펀을 방문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고온다습한 날씨 때문에 다소 힘들었다.





해안가 끝에 길게 늘어선 예류지질공원은 오랜 시간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을 거쳐 형성된

독특한 모양의 바위들이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여왕머리 바위부터 촛대 바위, 버섯 바위, 신발 바위 등 풍화작용에 생긴

다양한 바위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뒤로 보이는 여왕 머리 바위 앞에는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덕천강이 사 준 망고빙수를 맛보니 당도가 예사롭지 않다. 입안에서 저절로 시원하게 녹아 내렸다.




여왕머리 바위를 흉내내어 세운 조형물 앞에서 친구랑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진짜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으려면 더위를 참고 오래 기다려야 해서....


지우펀으로 가는 길에 볼 수 있었던 묘지들, 유교문화에 젖어있는 대만사람들은

망자의 유택을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묘의 바닥면적이 최소한 6평,

큰 곳은 8평이나 된다. 부부를 나란히 묻은 묘는 10평을 넘기도 한단다.

인구밀도가 높은 타이완인지라 화장 문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타이페이 북부에 위치한 지우펀은 항상 안개가 자욱하고 자주 비가 내리는 도시로

과거에 이곳에 아홉 가구만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외지에서 물건을 구입해 올 때

항상 서로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고 해서 '지우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우펀의 옛거리라고도 불리는 지산제[基山街]는 지우펀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으로

특산품 가게부터 기념품 매장, 유명한 맛집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상점들 대부분이 몰려있다.


특히 땅콩아이스크림은 빼놓을 수 없는 맛의 명물이라고 한다.

안동의 이신* 선생님이 사서 맛보라고 해서 먹어 보니 가히 환상적이었다.

커다란 땅콩엿을 얇게 갈아 전병 위에 듬뿍 뿌린 후 아이스크림을 얹어 돌돌 말아주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에 환희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지우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지우펀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눈요기를 한참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스펀라오제[十分老街]로 가서 마음의 소원을 적어 천등을 올리면 또 하루가 정리될 수 있다.


천등을 올리기 위해 여기까지 오는 이유는 바로 옛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기찻길 때문이다.

스펀라오제의 이색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기찻길 위에서 천등을 날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상점에서는 천등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천등의 가격은 상점마다 단색 NT$100,

네 가지 색 NT$150으로 정찰제이기 때문에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김윤현 시인께서 직접 쓰신 천등의 문구가 가슴에 확 와 닿는다.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감각의 소유자임을 어찌 인정하지 않으랴.







용산사, 민간신앙이 발달된 타이베이에는 아주 작은 규모에서부터 거대한 사원까지 수많은 사원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시민들한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사원이라고 한다. 1740년에 건립!

기둥과 처마의 경계 부분에는 못을 쓰지 않는 전통양식으로 되어 있다. 지붕의 사방에는

봉황, 용, 기린 등 길상을 상징하는 조형이 있으며 채색유리와 기와로 장식되어 있다.











설탕의 원료가 되는 사탕수수의 즙맛은 어떨까 싶어 마셔보았다. 처음으로 맛보는 것이지만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려 옥수수 대궁을 잘라서 베어먹을 때의 맛과 비교되었다.







건강에 좋다는 게르마늄 목걸이 팔찌 등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많은 분들이 하나둘씩 여기서 지갑을 열었다.

자신의 몸과 건강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중정기념관, 쉽게 말해서 장개석(1887~1975) 기념관이다.



장개석은 1928~49년 중국국민당 정부의 주석을 지냈고 1949년 이후에는 타이완의 국민정부 주석을 지냈다.

장제스는 해안에 인접한 저장 성의 비교적 유복한 상인·농민 가문에서 태어났다.

1913~16년, 중국의 공화주의자들 및 기타 혁명가들과 합세하여 중국의 새 총통이며

후에 황제로 등극한 위안스카이에 대항하여 싸웠다. 1925년 이래 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1926년 중국 북부의 군벌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싸워 중국 전역을 장악했으나,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하고

1946년 국공내전이 다시 시작된 후 1949년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게 내주게 되었다.

그는 국민당 잔여부대를 이끌고 타이완으로 건너가서 국민당 지도자들과 함께

중화민국을 건국하고 장기간 통치했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교되는 인물이다.


사진 양 옆에 있는 동양화 두 편은 장개석의 미망인이었던 송미령 여사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4대 박물관 중 한 곳인 고궁박물관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소장품만 약 68만 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소장품 중에는 민간 물품부터 중국 고대 황실 유물의 진귀한 물품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중국 5000 년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고궁박물관을 둘러본 뒤 펑리수 전문점에 들러 선물용 과자와 58도짜리 고량주를 구입했다.



시먼딩[西門町] 거리, 타이페이 젊은이들의 유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타이페이의 명동!



국당 선생은 먹음직스런 굴전[蚵仔煎]을 사서 망고빙수를 파는 가게로 가서 시원하게 맛있게 먹어보자고 한다.





망고빙수 가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를 실감케 하는 낙서들이 온벽과 천장에 가득했다.









타이페이 101은 지하 5층, 지상 101층, 총 높이 508미터로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원래 이름은 타이페이 국제금융센터, 숫자 8을 좋아하는 영향으로 8층씩 8등분해서 설계했다.

또한 외관은 불탑과 대나무를 연상해 건설되었다. 카페, 레스토랑, 대형서점, 명품숍이 들어서 있다.

89층에 있는 전망대로 가는 엘리베이터는 지상 5층에서 탑승하며 89층 전망대까지 37초만에

올라간다. 내부에는 태풍과 지진에도 건물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주는 600톤의 원형추가

공개되어 있다. 이 건물에 모두 3개의 원형추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공개되고 있는 거다.






600톤의 원형추는 전망대 89층 바로 아래 88층에 위치해 있었다.


산호에 새긴 조각들이 예사롭지 않은데 가격을 확인해 보니 놀라웠다. 수천 만원대가 즐비했다.



사진에 보이는 보석 네 개를 모두 구입하려면 억대가 넘어야 한다. 너무 비싸서

매매가 되겠냐고 가이드한테 물으니 "이 세상엔 돈 많은 사람들이 많아요." 한다.

 


타이페이 101 관람을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났다.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서 대구행 비행기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3박 5일의 타이완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노랑풍선 여행사와 현지가이드의 친절한 안내에 감사드리면서

간단하게나마 그간의 기록을 이렇게 남길 수 있었음에 또한 감사하고 싶다. 다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