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시 몇 편

북해도에서

우람별(논강) 2016. 2. 2. 07:57

북해도에서


호수를 거느린 화산(火山)은 

여럿의 얼굴이었다

들길 달리며 본 게 그랬다.

호숫가에 서서 본 게 그랬다

아이누(AINU)족 전설이 발자욱처럼 얽혀 있을 산기슭

저주의 눈사태로 이젠 털묻은 얼굴과 완만함이 남았다

하얗게 얼어버린 호수가 그랬다

모든 것을 감추고


갈매기 날아드는 창고 거리 

자작나무 한 그루

다다미방에 깔아놓은 이불처럼 속살마저 하얬다

숨 한번 고르며 뽀오얀 어깨에 기대어

잘록한 허리같은 야경을 살며시 안아보았다.

하코다테[函館]의 볼거리라 했던가


오타루 운하엔

눈발이 질투처럼 내려앉고

창고의 회색 고드름은 

눈덮인 운하로 곤두박칠 기세였고

가로등의 따스한 불빛만 

물결에 조금씩 일렁거릴 뿐이었다

삼삼오오 걸어갔던 과자 거리, 유리공예 거리는

눈의 숨소리였다

어깨 위로 사르르륵 쌓이는 


북해도의 겨울은 

가슴의 울림으로 망울졌다

쇼와신산, 도야호, 온천, 유람선, 닌자 게이샤쇼

삿포로 맥주, 오오도리 공원, 밤 깊은 이야기

사나흘에 보고 들은 세상, 무지개 핀 설국이었다

또 다른 마음풍경이었다. 추억으로 쌓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