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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의 신선, 도산 선생을 찾아가던 날

우람별(논강) 2014. 9. 14. 08:21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토담의 근무지를 방문, 오후 4시경

영양의 수비를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목 형님이 함께 하기로 예정되었으나

개인 사정이 급작스레 생기는 바람에 토담과 단 둘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요즘 닭장을 멋지게 지어놓고 문경 모처에서 분양받은 토종닭을 기르면서

솔솔한 재미를 느끼실 것같은 이목 형님의 삶이 자못 궁금했는데, 아쉽다.

 

토담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에 소재한, 국보 187호, 오층 모전석탑 앞에 와 있다.

토담은 이 탑의 모습에 매료되어 꽤 여러 번 이곳을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1층 탑신에는 감실이 단아하게 모셔져 있는데, 구미 선산의 죽장리 5층석탑과 유사하다.

이 탑은 감실이 낮아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비해 죽장리탑은 높은 곳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감실 안의 항아리는 무슨 용도로 쓰는가?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 어느 불자님의 부처님을 향한 정성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한다.

 

 

김교감은 학교 사택 입구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포항을 출발한 월여 선생도 평해, 백암온천을 거쳐 달려왔다는데

우리와 거의 동시에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다. 언제나 활기넘치는 월여 선생,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해서 이날도 영양 막걸리맛에 흠뻑 취했다.

 

도산 김교감은 쇠고기 몇 근과 송이버섯 1킬로그램을 미리 구입해 두었다가

우리 회원들을 위해 직접 상을 차리고 후라이팬에 구워서 끊임없이 제공했다.

직접 농사지은 방울토마토, 들깨, 상추, 쑥갓, 고추 등의 궁합은 최고의 맛이었다.

함께하지 못한 3명의 회원들에게 미안했다. 좋은 맛은 함께 즐겨야 제맛인데.....

 

진성과 류박사는 백암온천에서 수비로 넘어오는 구절양장의 굽이길을

어둔 밤길을 넘어오느라 애를 먹었기에 늦게 든 저녁식사가 꿀맛이었을 것이다.

 

토담이야 술 한 방울 안 마시지만, 불콰해진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흥겨웠을 것이다.

진정 술꾼의 고수는 마시지 않고도 그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는 것임을 그는 아는 듯하다.

 

계속 술만 마실 수는 없다. 김교감이 근무하는 교무실도 들르고 탁구도 한 번 치기 위해

학교의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 들어섰다. 교무실엔 수학교사 한 분이 근무 중이었다.

고3 담임이라고 하는데, 50대 중반이란다. 보기엔 꽤 젊어보였는데 그도 이젠 원로임에 틀림없다.

 

토담의 수비 자세가 돋보인다. 도산의 공격은 뭔가 불안한 듯하고.....

요즘 나는 매일 탁구를 치면서 운동을 즐겨왔는지라 언젠가 토담을 만나면

한 수 배워볼 겸, 도전장을 내밀어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역시

이날 토담은 안정된 수비와 공격으로 자신의 실력을 내게 잘 보여 주었다.

11점 내기, 네 번을 도전했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들어야 했다.

 

사택의 사정상 야외로 대화장소를 교문 부근으로 옮겨서 자리를 잡았다.

월여의 세월호 정국과 관련한 토론 제의로 현 시국상황 등과 관련한 토론이 있었으나

서로의 견해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화제를 바꾸기는 했으나

특별히 느껴지는 것은 월여 선생의 옛날에 비해 다소 보수화되었다는 점이다.

진보적 지식인들도 나이가 들면서 차츰 보수화 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아쉽다.

 

월여는 새벽에 잠시 눈을 붙이고 일찍 포항으로 떠났고, 나는 5시 40분쯤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을 주변을 천천히 걸으면서 산책을 했다. 안개에 묻힌 마을의 은근함이 너무 좋아서 자꾸만 걷고 싶었다.

해발 430여미터에 위치한 수비중고등학교의 아담함과 너른 운동장 또한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운동장 가 은행나무 밑을 지날 때는 요란한 참새들의 지저귐에 새벽의 고요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영양의 특산물은 단연 고추임에 틀림없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풍성한 고추밭 아닌 곳이 없었다.

 

70년대 가구의 모습이다. 화전민들을 위해서 정부에서 집단 거주지역을 만들어 준 곳이라고 도산을 말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생활의 곤궁함으로 여전히 집의 형태는 고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금경연 화백 추모비'라고 쓰여진 비가 하나 눈에 띈다.

봉화금씨, 서양화가, 33세 요절, 요절 당시 초등학교 교장 등의 기록을 보았다.

시간이 나면 가까이 있는 금경연 화백 기념관에 들러보고 싶은데......

 

금경연 화백의 조부께서 지었다는 '약천정'이 멋진 소나무들 품 아래 자리잡고 있다.

 

 

 

 

 

'약천정', '반곡정사' 글씨는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 선생의 친필이라고 한다.

 

 

약천정에 한창 머물고 있을 때, 지금 어딨냐는 토담의 전화를 받았다. 빨리 오란다.

다시 운동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침 7시쯤, 다들 일어나서

학교를 한 바뀌 돌면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삼손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검마산 휴양림을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며 도산은 제안했다.

 

 

귀한 능이버섯이 많이 들어간 버섯전골은 아침 식사로는 과분할 정도로 맛있었다.

주인장의 인정미넘치는 친절함까지 더해지니 더욱 좋다. 도산의 덕분이 아닐까 한다.^^

 

꽃의 혓바닥에 쌀밥풀 두 톨이 가지런히 놓인 듯한 이미지의 며느리밥풀꽃,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 중의 하나였고, 옆으로 퍼지며 피는 마타리꽃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시들어가는 분홍빛 잔대만이 긴 수술만을 하나 삐죽이 내밀고는 힘겨워하고 있었다.

곳곳에 아름드리로 자라고 있는 적송은 그 빼어남을 자랑하니 우리들 눈요기로는 충분했고

자작나무 군락지도 임도를 사이에 두고 다가가기 아까울 정도로 키크기 자랑을 하고 있으니

2, 30년 뒤에는 더욱 가관일 것이다. 늘그막에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다면

아름드리 소나무와 자작나무의 변화된 모습을 실감할 수 있을까?

 

검마산 휴양림의 임도 산책은 78동기 네 명끼리의 호젓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상큼한 공기 마시면서 찌든 삶의 찌꺼기를 걸러낼 수 있기도 해서 

며칠 간 만이라도 푹 눌러앉아 휴식을 취하다가 내려가면 참 좋겠다.^^

이정표 서 있는 곳에서 진성은 인증샷 하나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하산하기로 했으니 걸은 거리는 왕복 3킬로!!

 

사택에 돌아와 일제히 샤워를 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길을 나섰다.

토담과 진성이 한 차, 나와 도산이 한 차를 타고 안동을 향해서 가기로 한 것이다.

수비에서 안동까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워낙 천천히 안전하게 차를 모는

진성의 운전 습관 덕분에 1시간 30분 정도는 걸려서야 안동에 도착했다.

안동병원 근처에 위치한 동굴매운탕집에서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는 2시부터 경상북도교육연구원 출장이 있어서 먼저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다.

나머지 세 친구는 상주 관동리, 토담의 목조주택 건설현장에 들렀다가

구미로 포항으로 각각 갈 것이란다. 나 또한 공무를 처리한 뒤 갈 곳이 또 있다.

아내와 함께 경주로 가서 1박 2일 여행을 한다고 했더니 부럽다면서 놀린다.

진성은 구미로 돌아오는 길에 청도읍성을 꼭 한 번 들러볼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