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은 어느 달보다 바쁘게 살아야 하는 달이다. 계획된 것을 달력에 표시해 두었는데, 여름방학 전날까지는 하루도 비어 있는 날이 없다.
오늘 그 첫날, 어머니를 모시고 허병원(대구시 동구 소재)에 가야 한다. 최근 늑골 왼쪽 부분이 자꾸 아파서 골절이 의심된다며 엑스레이를 찍었고 그 결과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 왈,
"사진 상으로는 잘 나타나지는 않는데 통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뼈에 금이 간 것 같고 주사 한 방 맞고 1주일 정도 약을 처방해 드릴테니 잡수시면서 가슴 보호대를 꼭 차고 계셔야 합니다. 통증이 심하면 병원에 곧장 오세요."
“그럴게요. 괜찮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어머니는 의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낙천적인 편이라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웬만하면 허허 웃어 넘긴다고나 할까? 그런데 아버지와의 대화에서만큼은 다르다.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늘 긴장상태를 조성하곤 한다. 어느 한 분이라도 허허 웃어넘기면 해결될 것을 예민해져서 십중팔구 언쟁으로 이어진다. 평생을 그렇게 다투며 사셨으니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다. 자식들이 하는 얘기는 철썩같이 믿고 뭐든 다 들어줄 것 처럼 너그럽고 정이 넘치지만 남편에게만큼은 원망섞인 말뿐이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으신다. 어떤 이야기도 절대 통하지 않으니 자식들이 보기에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에겐 남편, 우리한테는 아버지인 그 분께서 언제부터 이렇게 어머니의 핀잔 대상이 되었을까? 그 이야기를 할라치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일테고 자식들도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서 일단 접어두고 최근 상황만 정리해 볼까 한다. 오늘 아침 어머니로부터 들은 소식이 있다. 아버지께서 <수필과 비평>에서 주는 황의순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머니야 아버지의 수상 소식엔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시큰둥하게 얘기를 하셨지만 우리 아버지 참 대단하시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께 여쭈니, 책꽂이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꺼내 무심히 건넨다. 살펴보니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고 통보하는 축하엽서였다.
"아버지, 축하드려요. 전 번에 출간하셨던 수필집 그것이 문학상 대상이 되었던 것 맞죠?"
"그래. 9월 초 비슬산 모처에서 시상식이 있다고 하더라."
"그날은 아버지께서 한 턱 쏘셔야겠습니다."
"그러지. 그 날 시간이 되면 내 한 턱 쏠테니까 그리 알라."
<수필과 비평>이란 월간지에 아버지께서 매달 수필 연재를 해 오신 지 몇 년은 되었다. 신변잡기적인 짤막한 수필이 아니라서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글들이다. 그러나 연세 좀 드신 분들은 아버지의 글이 정서적으로 교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적지않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30대 젊은 시절부터 오랜 세월 글을 계속 써 오셨고, 지금도 책상에 앉으면 펜을 들고 글을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시는지라 아버지의 글솜씨야 누가 의심하겠는가? 문학상을 수상한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두가 인정하는 필력이지만 그간 어른께서 써 오신 글이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아서 그 감동이 크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본적으로 글쓰기에 관한 한, 끈질긴 면이 강하다. 일종의 사명감이랄까, 목숨 다하는 날까지 당신께서는 글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아버지는 살고 계신다. 글을 쓰는 자세 그 자체가 남다르니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손에 힘이 없어 당신 쓰신 글씨를 잘 알아보기 힘들지만 아버지 육필 원고를 자주 접하는 나와 동생은 그래도 잘 읽어낸다. 매달 원고지 10여 매 이상의 글을 써서 나 아니면 동생에게 주면 우리는 워드로 몇 시간 동안 쳐서 출력해 드린다. 아버지께서는 최종 교정을 보시고 마음에 들면 <수필과 비평> 출판사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다. 이런 글쓰기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길 기대한다. 글을 쓰는 것이 어른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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