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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콘서트 시극 대본(초안)

구미낭송가협회 관련

by 우람별(논강) 2014. 3. 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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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러짐 

이권주

 

  무대 뒤 벽에는 ‘어우러짐'이란 글씨가 붙어 있고, 사회자(A)와 배우들(B,C,D)은 객석을 향해 앉아 있다. 사회자는 전면을 향해 약간 비스듬히 따로 앉았고, 나머지 세 배우들은 긴 탁자를 앞에 두고 전면을 향해 있다. 흐르던 음악이 서서히 조용해지고 조명이 들어오면,

 

A: 오늘 이곳 무대에 세 분의 시낭송전문가를 모시고 그분들의 짤막한 이야기와 낭송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한 선생님께 여쭙겠습니다. 시낭송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B: (약간 코믹조로) 시적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음성의 예술? 표현욕의 또 다른 표출 방식? 발표 순간의 기쁨과 환희? 지리산 같은 깊이와 다정다감함도 묻어 있구요. 여하튼 제가 요즘 포옥 빠져있는 분야가 바로 시낭송입니다. 사랑해요 시낭송!!

 

A: '지리산 같은 깊이와 다정다감함'이라는 표현, 정말 멋진데요.

 

B: 시낭송의 격을 한층 높여 주는 표현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제가 지리산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시낭송을 거기에 비유해 본 겁니다. 사랑해요 시낭송!! 

 

A: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다른 배우에게 눈길을 주면서) 최 선생님께서는 시낭송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C: 아, 예,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시낭송이야말로 시인들의 마음에 '공감하기', 또는 ‘쌈싸먹기’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A: ‘쌈-싸먹기’라고 하셨나요? 좀더 쉽게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C: 쌈을 싸먹는 즐거움만큼이나 시인들이 써놓은 시를 낭송의 예술로 맛갈스럽게 표현하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이지요. 시를 감정의 이파리로 훌훌 싸서 호흡을 고른 뒤에 술술 풀어내는 야들야들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해서 시적 주인공들의 고결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으니 그게 최고 아닙니까?

 

A: 아,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또 다른 배우에게 눈길을 주면서) 다음은 김 선생님께서 마이크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이) 선생님께서는 시낭송을 하기 전에 시조창을 좀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시조창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D: (자신감 있는 태도로) 한국문학의 장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시조이고, 그 의미있는 시조에 가락을 붙여 멋지게 불러보는 그 독특함과 개성이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긴 있어요. 시조창은 '여운의 미학'을 잘 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죠? 종장의 마지막 부분을 굳이 부르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주는 ‘여운의 효과’가 아주 강렬하거든요. 잠시 후 맛을 조금 보여드리겠습니다.

 

A: 이렇게 해서 시낭송가들의 말씀을 들어보았구요, 이젠 시낭송가들께서 직접 그 솜씨를 발휘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가벼운 음악과 함께 배우들은 편안한 태도로 대기하고 있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 자리에 일어나 준비된 낭송을 한다. 평상시와 다르게 감정을 많이 넣고 제스처를 사용해도 좋다. 흘러나오는 음악의 흐름과 분위기를 잘 살리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 선생님은 이원수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최 선생님은 이외수의 ‘설야’란 시를 차례로 낭송하고,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면/ 눈이 내린다는 그 한 마디// 어디선가 / 나귀등에 몽상의 봇짐을 싣고/ 나그네 하나 떠나가는지/ 방울소리/ 들리는데/ 창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함박눈만 쌓여라/ 숨 죽인 새벽 두 시// 생각 나느니 그리운이여/ 나는 무슨 이유로/ 전생의 어느 호젓한 길섶에/ 그대를 두고 떠나 왔던가// 오늘밤엔/ 기다리며 기다리며/ 간직해 둔 그대 말씀/ 자욱한 눈송이로 내리는데// 이제 사람들은 믿지 않으리/ 내가 홀로 깊은 밤에 시를 쓰면/ 울고 싶다는 말 한마디// 이미 세상은 내게서 등을 돌리고/ 살아온 한 생애가 부질없구나// 하지만 이 시간 누구든 홀로/ 깨어 있음으로 소중한 이여/ 보라 그대 외롭고 그립다던 나날 속에/ 저리도 자욱히 내리는 눈//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길 하나/ 그대 전생까지 닿아 있음을

 

  사회자도 자리에서 나와 조지훈의 ‘산중문답’을 낭송한다.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는가// 마당가 멍석자리 삽살개도 같이 앉아/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맛을 자네가 아는가// 구름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낛는 맛을/ 자네 태곳적 살림이라고 웃을라는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데,/ 소원이 뭐가 있는고 /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 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는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만합니다.) // 청산 백운아/ 할 말이 없다

 

  이어서 김 선생님이 무대 한쪽에 있던 북을 갖고 나와서 차분하게 자리를 잡은 후 시조창 ‘청산리 벽계수야’를 완창한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오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

 

A: (객석 앞으로 나오면서) 다들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제가 잠시 끼어들어 남성의 목소리를 보탰습니다만 혹 분위기를 깨뜨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시범을 보이신 시조창은 어떠셨나요? 시낭송과 잘 어우러지지 않던가요? 여하튼, 우리들의 '어우러짐'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배우들과 손잡고 동시에 인사하면서 조명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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