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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극 대본(안)

구미낭송가협회 관련

by 우람별(논강) 2013. 1. 2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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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인이 되던 날 (시, 우연한 만남)

 

무대: 왼쪽에는 담벼락에 광목을 친 포장마차, 가운데 뒤편에 탁자를 하나 차지한 한 남자가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오른쪽 무대 앞 쪽에는 두 여인이 탁자를 앞에 놓고 비스듬하게 마주 보고 있다. 의상은 어떤 격식도 필요없다. 소품으로는 주전자, 막걸리 잔, 소주병, 소주잔이 탁자 위에 자연스레 놓여있으면 된다.(조명이 켜지면 사회자가 무대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와 정중히 인사를 한다.)

 

사회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선술집 주인이구요. 저 남자분은 우리집 단골이시고, 여성 두 분은 처음 뵙는 분인데, 말씀하는 것을 관심있게 들어 보니 보통 분들이 아닌 듯 합니다. 그분들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여볼까요? (사회자는 제자리로 돌아가 손님들을 위하여 음식을 마련하고, 세 사람의 대화나 낭송에 계속적인 관심을 갖는다. 때론 추임새를 넣기도 하면서 차츰차츰 국악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

 

A(소연) : 아주머니, 소주 한 병 더 주시구요, 우리 돼지두루치기 한 접시 갖다 주시고, 이왕이면 이야기 한 접시도 덤으로 좀 주실 수 있어요?

 

사회자(선술집 주인): 이야기 한 접시요? (살풋 웃으면서) 원한다면 시조창 안주 정도를 덤으로 드릴 수 있어요.

 

B(영숙): (놀라면서) 시조창을 들려주신다구요? 안주치고는 너무 고급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좋-습니다.^^

 

A : 영숙씨, 내가 20대 초반 학창 시절, 시 쓰기에 푹 빠져있던 때에 썼던 시 하나가 있어요, 들어 보실래요?

 

B : (매우 놀라는 표정) 오, 그래요? 멋지십니다. 시도 쓰시고, 낭송까지 하신다는 말씀이신데, 좋습니다.

 

A : (낭송을 시작한다) 제목은 <뎃생 연습>이라고 붙였습니다.

흰 도화지와 연필만으로 시작했어요./ 세상을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키로 발돋움하며/ 움직이질 않고, 움직이지 않으나 살아있어요.// 물체와 내 눈과 손이/ 얽어놓은 숱한 그물 속에서/ 점들이 탱탱하게 견디고 있어요.// 가장 빛살 부실 때 몸 숨기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춤을 춰야 하는// 우리 살아가는 이야기

 

B : 짧은 시지만, 긴장감이 넘치네요. 가장 어두운 곳에서 춤을 춰야한다는 말이 당시의 우리 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소연님께서 들려주는 시낭송을 들으니 갑자기 옛날의 절친했던 친구가 생각나는군요. 시를 너무너무 잘 썼던 친구였는데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아주아주 좋아했어요. 그래서그런지 박목월의 <가정>이라는 시를 자주 애송해서 나도 그 시를 낭송할 정도였다니까요.

 

A : 그러세요? 그 애송시 한번 들려 주실 수 있나요?

 

B : (일어선다. 그리고 분위기에 맞게 <가정>이라는 박목월의 시를 멋지게 낭송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A, C, 선술집 주인 모두 박수를 치면서 반응을 보이고.....)

A :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시인이 되고 싶은 욕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더라구요. 최근에 제가 모 잡지에 발표한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과일노점상 배씨>란 시인데, 아주 반응이 좋았어요. 들어보실랍니까? (분위기에 맞게 낭송한다. 중간중간에 변화를 주어도 좋다.)

수묵빛 엷은 웃음을 늘 물고 있는/ 과일노점상 배씨는/ 왼손 왼다리 소아마비인데도 뭣이 그렇게 좋을까// 어설픈 몸놀림으로/반질반질 초칠한 것처럼 닦아놓은/ 붉은 사과 알들을/ 주섬주섬 느릿느릿 한 봉지 담아 팔면서도/ 오른손이 안 그런 게 얼마나 고마운데 연방 싱글싱글 웃는다// 서른 여섯 나이에/ 벌어놓은 돈 없고 배운 것 없고 몸까지 저러니/ 애만 안 딸리면 과부도 괜찮겠지 하며/ 하얀 푸념 늘어놓던 엄마가 서둘러/ 빌린 돈 오백만 원에 사 온 베트남 처녀/ 동글동글 동자승 같은 아들놈까지 /하나 쑥 빼놓으니/ 세상사 아무 것도 부러운 게 없다// 이 얼음 같은 세상살이/ 시린 발 둥둥대는 어둔 길거리에서도/ 이른 서리에 미처 따지 못해 얼어버린 감처럼/ 눈바람에 설익은 얼굴을/ 끝만 따낸 목장갑 손으로 비비다가/ 30촉 백열등 불빛이라도 어딘데 고마워하며/ 흥얼흥얼 봉선화연정을 부른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 내리쬐는 뙤약볕 온몸으로 받으며/ 느긋하게 물속에 몸 담그고 하품하는/ 이빨 누런 하마같이 웃는다/과일 노점상 배씨는//

 

B : (박수치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참 좋았어요. 저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임을 알게 됐어요. 친구를 통해서 시를 낭송하는 것이 좋아졌고, 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어느 날 시인이 되었답니다. 부끄럽지만 등단할 때 썼던 작품 하나 소개할게요. '배꽃'이란 시입니다.

저 넘어 언덕 위로/ 배꽃 흐드러졌다./고고한 자태 전설처럼/길 위에 뿌려놓은/ 봄꽃이어라// 새색시 볼처럼 피어서/ 타고 내리는 부끄럼 같아/ 하늘도 맑고 푸르기만 하다// 부셔라, 돌배나무에 걸린 햇살/ 배꽃 무리에/ 애무하는 한낮은/ 정갈하신 할미 머릿결처럼 곱다//

 

(옆에서 듣고 있던 A, C, 선술집 주인 모두 자연스레 반응을 보인다.)

A : 마지막 부분, '애무하는 한낮은 정갈하신 할미 머릿결처럼 곱다'는 부분이 가슴에 확 와 닿습니다.

 

C : 두 분의 시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이 선술집에 수도 없이 와 봤지만 오늘은 참 특별한 날인 것 같습니다. 두 시인님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저도 잠시 끼어들어 아버지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들어주실랍니까? (A, B는 이구동성으로 청한다.)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시입니다.(이미 한잔 취한 듯한 말투다.)

 

사회자 : 늘 술만 취하면 혼자 중얼거리면서 세상을 향해 욕을 하거나 권주가만 불러대는 양반이라서, 불쌍하게 봤는데 아버지 얘기를 들려준다고?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으쌰아. (사회자 북 반주를 준비한다. 적당한 부분에 추임새를 넣어도 좋다.)

 

C : 아주머님, 제가 비록 술주정뱅이일망정 오늘 분위기는 최곱니다. 이렇게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일어선다. 다소 상기된 목소리, 변화를 주면서 낭송해도 좋음.)

고등학교 다닐 때였지./ 노가다 도목수 아버지 따라/ 서문시장 3지구 부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할매술집에 갔지./ 담벼락에 광목을 치고 나무 의자 몇 개 놓은 선술집/ 바로 그곳이었지 노가다들이 떼서리로 와서 한잔 걸치고 가는 곳/ 대광주리 삶은 돼지다리에선 하얀 김이 설설 피어올랐고/ 나는 아버지가 시켜주신 비곗살 달콤한 돼지고기를 씹었지/ 벌건 국물에 고기 띄운 국밥이 아닌, 살코기로 수북이 한 접시를/ 꺽꺽 목이 멕히지도 않고/ 아버지가 단번에 꿀떡꿀떡 넘기시던 막걸리처럼/ 멕히지도 않고, 이게 웬 떡이야 잘도 씹었지/ 뱃속에서도 퍼뜩 넘기라고 손가락이 넘어왔었지// 식구들 다 데리고 올 수 없어서/ 공부하는 놈이라도 한번 실컷 먹인다고/ 누이 형제들 다 놔두고 나 혼자만 살짝 불러 먹이셨지/ 얼른얼른 식기 전에 많이 묵어라시며/ 나는 많이 묵었으니까 니나 묵어라시며// 스물여섯에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남몰래 울음 삼켰지/ 돼지고기 한 접시 놓고 허겁지겁 먹어대던 그날/ 난생 처음 아버지와의 그 비밀잔치 때문엣/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일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지금도 서문시장 지나기만 하면 끄 때 그 선술집에 가서/ 아버지와 돼지고기 한번 실컷 먹고 싶어 눈물이 나지/ 그래서 요즘도 돼지고기 한 접시 시켜놓고 울고 싶어지지.

 

사회자 : 권주씨, 제가 비록 선술집 주인일망정, 저도 오늘 같은 날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우리 단골께서 아버지 얘기를 했으니, 나도 우리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시조창 하나 할테니까. 들어보실래요?

(시조창을 마치면, 모두 다 나와서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음. 여운이 남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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